서른여섯 번째 편지(2020.11.3)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호랑 애벌레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벌레마다 내부에 나비가 한 마리씩 들어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곧이듣다니, 너도 참 웃기는 애구나. 우리의 삶은 기어 다니다가 기어오르는 거야. 우리 모습을 봐! 어느 구석에 나비가 들어 있겠어. 이런 몸뚱이나마 최대한 이용해서, 애벌레의 삶이나 열심히 즐기라고!”
“그 애가 옳을지도 몰라. 나한테 무슨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비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그런 환상을 꾸며 낸 것일까?”
커져가는 것이 두려움뿐이었다면 포기해버리고 말면 그만이었을 거다. 그러나.
“일단 나비가 되면, 너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 말이야. 그런 사랑은, 서로 껴안는 게 고작인 애벌레들의 사랑보다 훨씬 좋은 것이란다.”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시공주니어, 1999) 중에서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진정한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느낌인 걸까? 너무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라는 것뿐. 어떻게든 그 사랑을 소화하고 싶다. 서로 껴안아주는 애벌레의 사랑이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애벌레의 사랑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나비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 애벌레로서 사랑하는 시간도 충분히 좋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랑법이 필요할 때가 왔으니까.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5주 차 셀프워크숍 ‘내 생의 마지막 날’(2017.5) 중에서
온라인 게임을 나온 지 1년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이제는 뭔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퇴직 직후에는 감히 기대도 할 수 없었던 변화였다. 물론 반가운 변화였다. 문제는 '대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였다.
꼭 이런 마음일 때 스승을 만났다. 스승의 안내를 따라 한 발짝씩 걸으며 막막하기만 하던 내 마음의 밀림에서 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 길 위에서 평화로웠다. 할 수 만 있다면 '죽음의 레이스'라 불릴 정도로 혹독한 연구원 과정이라도 다시 하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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