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길치의 깨달음, 길 위에서 쫄지 않는 법

서른네 번째 편지(2020.10.27)

by아난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고양이 마을로 알려진 김녕미로공원이었다. 딸아이의 선택이었다. 아이의 선택 포인트는 오로지 ‘고양이’. 아이 입장에선 고양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을 터였다. 문제는 엄마인 나였다. 하필이면 ‘미로공원’이라니.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방향감각이 떨어져선지, 공간지각능력의 문제인지 길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초행길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가끔은 몇 차례나 오가던 길도 갑자기 가물가물해지며 머리가 하얗게 되곤 했다. 최단거리, 최고효율의 루트를 능숙하게 찾아내 폼 나게 안내하고 싶은 욕심과는 달리 길 위에만 서면 유독 더 느리고 한심하게 허둥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도무지 편해지지가 않았다.


이런 나였으니 ‘미로’라는 말에 저항이 확 올라왔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가슴의 소리’에 따라 처음 스스로 선택한 여행지가 아닌가? 게다가 미로라고 해봐야 ‘공원’, 그러니까 가상현실일 뿐인데 예민하게 굴 일이 뭐가 있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니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도 차올랐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착했던 제주에서 지난 사흘 펼쳐진 시간들이 마치 나를 위해 정교하게 디자인된 치유프로그램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혹시 알아?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 삶의 미로에서 벗어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도 건네받게 될지. 버스 창문에 비친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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