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서른세 번째 편지(2020.10.13/19)
그렇게 4박 5일간의 일정 중 사흘 오전을 오롯이 혼자서 보낼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런 시간이 가능하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꿈만 같았지만 막상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반가움보다 막막함이 먼저 밀려왔다.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자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에는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가 기뻐할 것 같은 ‘바다 앞 드로잉 카페’를 답사하며 아이에게서 돌려받은 시간 첫 자유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흐뭇함으로 살아온 세월의 관성이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녀온 ‘미술관 카페’에서 뜻하지 않게 붓을 잡게 되면서 나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하던 두려움 한 뭉텅이를 녹여낼 수 있었던 덕분이었을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해 가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몇 해 전 제주여행에서 시간이 안 맞아 문 앞까지만 가고 들어가 보지 못했던 천년의 숲 비자림이 궁금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아이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몇 번 권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결국 재미있게 다녀오라는 딸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홀로 하는 여행은 숙소를 빠져나온 첫 발자국부터 시작되었다. 가는 길부터 오롯이 내 리듬에 따라 움직이고 멈추며 호젓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비자림 숲길은 천천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긴장을 풀어내며 호흡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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