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번째 편지(2020.10.6)
딸과 단 둘이 떠난 제주 여행의 컨셉은 ‘애쓰지 않기’였다. 내내 집에만 있기가 너무 답답하다며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고 싶다고 보채는 아이가 안쓰럽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이다 시험이다 저마다 떠나지 못할 사정이 있는 남편과 큰 아이도 걸렸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나의 컨디션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집에서의 루틴한 일상조차 버거울 만큼 휘청이고 있었다. 나를 치유해 보겠다고 작정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믿었던 1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라 여기며 버려지지 않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인 자신에 대한 실망과 이런 상태로 남은 삶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해일처럼 덮쳐 왔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힘을 내 봐야지 맘을 먹어보지만 좀처럼 기운이 차려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전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금 나의 상태에 솔직해지는 것뿐이었다.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이가 여행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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