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편지(2020.9.15)
미리 계획하고 떠나온 여행이었다면 제주에서 내가 붓을 잡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림은 나와 상관없는 세계였다. 제주에서 첫 아침을 맞았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조식을 먹으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몇 가지 관광 코스를 안내받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딸아이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지만 아이 역시 시큰둥했다. 그렇다면 더구나 무리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한참 방 안에서 아이가 가지고 온 그림도구를 방 안에 펼쳐놓고 노는 것을 지켜보다가 거실로 나왔다. 모두 저마다의 행선지를 향해 떠난 공간이 고즈넉하다. 얼마나 멍하니 앉아 있었던 걸까?
“정말 안 나가셨네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거실로 올라오신 사장님께서 물으셨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하고 왔거든요.”
“아이는 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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