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맞이할 1시간 53분 속으로 풍덩!

언니공동체(2020.7.9)

by아난다
엄마 나이 서른다섯은 위험한 나이 (1080 x 1080 px) (31).png


서둘러 계단을 오릅니다. 7주 동안 도망치지 않고 자신과의 대면을 감당해 낸 저를 위해 오늘은 특별히 특실을 예약했습니다. 3호차 2A. 열차가 도착하려면 아직 3분이나 남았습니다. '그 짬에 매일 간단히 포스팅하는 일일습관 리포트나 해치워볼까. 열차 타기 전에 후딱 해놓고 열차 안에선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죽은 듯이 푹 자야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1. 2줄 에세이, 오늘은 따로 쓴 글이 없으니까 대체 습관으로 메모해 놓은 글감을 기록하고,

2. 기존글 포스팅, 아침에 올려놓은 포스팅 링크도 걸어놓고

3. 1일 1 비움, 외출 전 바카라상정리하며 모아 버린 퇴고원고 사진을 첨부하고야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도착을 안 한 걸까요. 플랫폼 전광판의 시계는 10시 47분. 어? 42분 기차였는데.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뭐야, 열차가 들어왔다 갔는데 그것도 몰랐던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진짜, 너 정말 이러기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바보 같이. 아니야. 연착일 수도 있잖아. 5분쯤 연착은 흔한 일이잖아.' 혹시나 싶어 두리번두리번 아무리 연착의 흔적을 찾아봐도 허사입니다. 실화였습니다. 포스팅에 정신이 팔려 지금 여기의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겁니다. 또.


후~ 후~ 심호흡. 심호흡.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일단 진정하고 우선 내려가서 환불부터 하자. 그리고 시간 맞는 다음 차표 다시 끊으면 되지. 차분히, 차분히. 다음 차는 41분 용산행, 용산은 좀 애매한데. 뭐래? 내려서 택시 타면 되지. 이 상황에 찬밥 더운밥 가리고 있냐고.


어찌어찌 열차에 올라탔지만 한번 리듬을 잃은 심장 박동은 좀처럼 잦아들 줄 모릅니다. 바카라이라도 읽을까 싶어 가방 안에서 『마음이 아플 땐 불교심리학 』을 꺼내 열차 선반에 내려놓습니다.


나는 혼자서 고요한 명상을 통해서는 나의 문제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명상에서 배운 원칙을 일상에서 통합하고 체현하는 작업을 생략할 수 있는 지름길이나 영적 우회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색연필로 밑줄을 칩니다. 딱 지금의 제가 서 있는 지점. 저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을까요? 저도 모르게 바카라 쪽으로 엉덩이를 바짝 당겨 앉습니다. 그러다 번쩍, '아~ 이러다 또 넋 놓고 있다가 용산역도 지나치는 거 아냐?'


긴장으로 다시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호흡, 호흡, 호흡. 가까스로 거친 호흡을 다스려 다행히 용산역에서 무사히 하차 성공했습니다. 길 찾기 검색해 보니 택시 타면 16분이랍니다. 늦어도 12시까지는 들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바로 전철 타는 곳이 있습니다. 시간은 아직 11시 35분. 잘하면 전철로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차 놓쳐서 날린 돈이 있는데 여기서 또 택시를 탈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열차가 바로 출발한 걸까요? 플랫폼이 썰렁합니다.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타야 하나? 아냐, 기왕 여까지 왔는데 나가서 헤매느니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지. 허둥대지 말고 침착하자 침착해.' 드디어 옥수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3호선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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