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프로젝트 인생이 발견한 '자발적' 개미지옥
100일의 리듬을 처음 체험한 것은 고2 겨울방학 때였다.
우리 미옥이는 어릴 때부터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일 리 없다. 물론 거짓말도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 폭발적인 단기암기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위 벼락치기의 여신. 전후좌우를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머릿속에 밀어 넣는 데는 제법 재주가 있었다. 엄마가 기억하는 내 1등 신화의 대부분은 이 벼락치기의 결과였다.
문제는 시험이 끝나면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별 불편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어도 똑똑한 척하고 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고2 겨울방학 때 모의고사 성적으로 대입상담을 받다가 이 성적으로는 이름을 아는 대학에 가기 어렵겠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어떻게든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장착해 보기로 했다. 자신 따위가 있었을 리 없다. 신문에서 본 '스파르타형 기숙학원의 폐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어쨌거나 바카라상 앞에 앉아있게는 해준다는 말이잖아. 21일이면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무사히 살아 나왔고, 그 기세를 몰아 딱 100일만 채워보기로 했다.
왜 하필 100일이었는지는 모른다. 100일이 참을 수 있는 가장 긴 단위라는 직관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100일의 관문을 통과하며 시험 전에만 반짝 써먹던 머리를 매일 규칙적으로 쓰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는 비약적인 성적 상승이었다. 놀랍게도 고3 첫 모의고사에서 학력고사 점수를 100점 이상 올리며 전교 1등을 해버렸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평생 꾸준히 하겠다는 약속은 막막하지만 100일은 해볼 만했다. 무엇보다 100일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면 시작할 때와는 다른 상태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100일은 내 삶의 익숙한 리듬이 되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판을 벌이고, 집중해서 해보고, 어느 정도 답을 얻으면 다음으로 넘어갔다. 아이템을 바꾼 100일 프로젝트의 무한반복이 '자기 탐험'이라는 아이템을 만나기 전 나의 패턴이었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00일 프로젝트 인생을 살던 나는 어떻게 십수 년 동안 자기 탐험 프로젝트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2011년에도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013년에도 그랬다. 2016년, 2018년, 2019년, 2020년에도 그랬다. 시점도 독자도 달랐지만 오래된 글들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보니 그 밑에는 같은 질문이 흐르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본다.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말이 되던 안 되던 그 답을 살아본다. 그러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난다. 다시 돌아보고, 다시 묻고, 다시 살아본다. 십수 년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겹지가 않다. 오히려 점점 더 재미있다. 왜 그런지 이번에 아카이브를 정리하면서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십수 년째 같은 바카라을 반복해서 읽고 있다. '미옥'이라는 산바카라(살아있는 바카라).
그런데 이 바카라은 보통 바카라과 다르다. 내가 읽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새로운 문장이 쓰인다. 게다가 바카라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독자도 계속 달라진다. 2013년의 기록은 그대로다. 하지만 2016년의 삶을 지나 읽는 2013년과 2020년의 삶을 지나 읽는 2013년, 그리고 2026년의 내가 다시 읽는 2013년은 전혀 다르다. 새로 쓰인 뒷장을 읽고 앞장을 다시 펼치면 이미 수없이 읽었던 문장이 다르게 보인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사건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십수 년째 같은 바카라을 읽고 있지만, 사실은 한 번도 같은 바카라을 읽은 적이 없는 셈이다.
기록의 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쌓일수록 더 많은 길을 만들어 나를 미로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동시에 지나온 길을 되짚어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된다. 하지만 나오려고 서두를 이유도 없다. 길을 잃어도 결국 내 안이다. 그렇게 찾아헤매던 '나'이자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던 '나'란 말이다. 그러니 마음편히 헤매도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 중이다. 자기 탐험 아카이브를 정리하다가 엉뚱하게도 살림명상 랜딩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오래된 글을 읽다 보니 지금까지 해온 자기 탐험과 살림명상의 관계가 새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설명을 걷어내고 나니 살림명상의 프랙티스는 놀랄 만큼 간단했다.
명상은 읽기.
살림은 쓰기.
지금 여기의 나를 읽는다. 읽어낸 것을 지금 여기의 삶에 써본다. 그렇게 살아본 삶을 다시 읽고 또 쓴다.
읽기 → 쓰기 → 다시 읽기 → 다시 쓰기
가만히 보니 내가 십수 년 동안 해온 '자기 탐험'이라는 것도 정확히 이 과정과 결과다. 그리고 이건 정말 살림을 닮았다. 살림에는 졸업이 없다. 어제 밥을 먹었다고 오늘 먹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고, 어제 깨끗하게 치웠다고 오늘의 살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주 단순한 일을 평생 반복한다.
오랜 자기 탐험의 과정을 실천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살림명상의 프랙티스도 그렇다. 아주 간단한 모듈을 무한반복한다. 그런데 반복되는 것은 형식뿐이다. 하루도, 아니 한순간도 같은 경험은 아니다. 몸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현장이 달라진다. 방금 전의 경험을 읽고 난 다음 순간의 나는 이미 조금 달라져 있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다시 발을 담그는 나도 계속 달라진다. 그제야 처음의 질문에 대한 답이 보였다. 100일 프로젝트 인생을 살던 나는 어떻게 십수 년 동안 자기 탐험 프로젝트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같은 프로젝트에 머물렀지만 같은 경험에 머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100일은 끝난다. 하나의 실험도 끝나고, 하나의 질문도 끝난다. 하지만 그 실험을 통과한 나는 달라진다. 달라진 내가 다시 삶을 살면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 또 궁금해진다.
이번에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시 읽는다. 읽어낸 것을 삶에 써본다. 살아본 삶을 다시 읽는다. 그럴 때마다 나라는 산바카라에는 새로운 페이지가 쌓인다. 새로 쓰인 페이지를 읽고 돌아오면 오래된 페이지까지 새롭게 읽힌다. 읽어도 읽어도 읽을 것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읽을수록 읽을 것이 생긴다. 기쁨의 화수분이다. 100일이면 웬만한 것은 해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던 '싫증내기 대마왕'이던 내가 십수 년째 자발적으로 빠져나오지 않고 있는 개'미'지'옥'.
아, 그래서 내 이름이 '미옥'인가?
52세, 결혼 23년 차, 육兒 22년 차, 육我 17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