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과 삶이 함께 흐르는 삶
요즘 오래된 글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2011년, 2013년, 2016년, 2018년, 2019년, 2020년. 다른 시점,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쓴 글들이다. 그런데 한꺼번에 놓고 보니 목적은 놀랍도록 한결같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
2011년에는 가장 가까운 독자인 남편에게 내가 겪은 변화를 설명했다. 2013년에는 전환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든 프로그램〈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함께할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16년에는 퇴직을 앞두고 다시 내 삶을 들여다보았고, 2018년에는 변형의 현장이었던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교육팀장이 되어 연구원과정을 다시 체험하며 내게 일어난 변화를 되돌아 보았다. 2019년에는 커뮤니티 레터 마음편지를 통해 스승의 이야기를 기다리던 불특정 다수에게 내 이야기를 전했다. 시점도 독자도 달랐지만 내가 다루는 소재는 늘 같았다. 나의 변화 이야기.
답을 알고 있어서 전달한 것이 아니라, 쓸 때마다 다시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시작한 육아휴직을, 작가보다 엄마가 먼저라며 4년까지 연장해쓰더니, 별안간 복직을 했다가 마침내는 퇴직을 했다. 퇴직 이후의 삶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지도에 없는 영토를 탐험하는 심정이었으니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뿐이었다.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그저 평생을 다닐 수 있다는 것에 혹해 일터를 결정할 만큼 안정지상주의자였던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실제로 2013년에 쓴 글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다. 한 꼭지의 제목인 줄 알았는데 오래된 글들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보니 오랫동안 이어져온 자기탐구를 관통하는 질문이었음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이 있다. 한 주제로 이렇게 많은 글을 쓰면서도 바카라으로 묶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고가 부족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2012년에 이미 한 권 분량의 완성 원고가 있었고, 심지어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출간 준비를 하기까지 했다. 이후에도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썼다. 바카라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번번이 바카라으로 묶이지 못하고 다른 형태의 글과 프로그램으로 흘러갔다.
아주 오래 그 이유를 원고에서 찾았던 것 같다. 아직 뭔가 부족한가? 전체를 꿸 수 있는 한끝을 못 찾았나? 아니면 정말 이번 생에는 바카라과 인연이 없는 건가? 그런데 이번에 『엄마의 육我휴직』을 실제 바카라으로 만들어가면서 전혀 다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늘 바카라보다 더 중요한 삶의 과제가 있었다. 2012년에는 출간보다 초등학생 엄마로 살아남는 일이 급했다. 2016년에는 안정된 온라인 게임을 그만둘 것인지를 결정하고 낯선 살림의 세계에 적응하는 일이 먼저였다. 이후에는 교육자로서 나를 시험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과 실제 현장을 살아내는 일이 이어졌다. 글은 그 삶을 따라 계속 생겨났지만, 한 권의 바카라으로 묶어 내는 일은 늘 다음으로 밀렸다.
바카라을 한 권 익혀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도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엄마의 육我휴직』은 이미 2년 동안 고쳐온 원고였다. 그런데 원고를 쓰고 고치는 것과 그것을 한 권의 바카라으로 완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수없이 읽고 덜어내고 연결하고 결정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형태로 고정해야 했다. 때마침 다리가 부러져 한 달 가까이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바카라 역시 아직 끝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동안 바카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을 꼭 실패라고 부를 필요는 없겠다. 그때의 에너지는 바카라 대신 삶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고, 15년을 다니던 온라인 게임을 떠나고, 살림을 익히고, 사람들과 실험하고, 새로운 현장을 만드는 데 쓰였다. 그리고 그 삶에서 다시 글이 나왔다. 아니 글을 쓰며 길을 만들어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아직 탐험하고 싶은 길이 남아있으니 '바카라' 따위를 만들겠다고 삶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그 글들을 쓰며 찾으려 했던 길이 목적지에 닿았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방향을 바꾸면서 가장 원했던 것은 작가가 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나를 소진시키는 의무가 아니라 내가 기꺼이 살아보고 싶은 삶이기를 바랐다. 이것을 스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라고 표현하셨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필요는 또 뭐가 있겠는가? 나의 기쁨과 가족의 기쁨이 공명하는 현장, 다시 말해 가족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퇴직을 결심하던 당시에는 그것을 이루면 작가로서의 성취나 어떤 슬롯적인 성공도 함께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물론 여정의 시작이었던 휴직을 결심하던 때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작가로서의 성취나 슬롯적 성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퇴직한지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내게 '세상에서 제일'은 고사하고 기회비용을 만회할 수 있을 만큼의 외적인 성취도 없다. 이것저것 하는 일은 많아 보이지만 여전히 생활비의 대부분은 남편의 수입에 의지하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취미 이상이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이 사실은 꽤 중요하다. 만약 작가로 크게 성공한 뒤에 지금의 평화를 얻었다면 나는 여전히 성공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성공해서 행복해진 것인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서 행복해진 것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성공하지 못하고도 충분히 행복해진 덕분에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나의 삶에서는 외적인 성취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다. 외적 성취를 이뤄야만 내가 원하는 행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은 도저히 더 이상 붙들고 있을 명분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바카라이 내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바카라보다 먼저 직접 움직여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제들이 있었다. 아이를 키워야 했고, 온라인 게임을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했고, 낯선 살림을 익혀야 했고, 새로운 현장을 만들어 직접 살아봐야 했다. 여전히 중요한 삶의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다만 그 성격이 달라졌다. 큰아이가 성인이 되었고 둘째도 본격적인 수험생활에 접어든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내 현장을 지키며 가족에게 가장 안정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일을 위해 그동안 살아낸 삶을 조용히 갈무리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작업이 어디 있을까?
덕분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엄마의 육我휴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괜한 무리를 하고 싶지 않아 출간 예정일을 내년 봄으로 넉넉히 잡았는데, 이제는 보내놓은 저작권 검토 메일의 회신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오래된 글들을 다시 꺼내 아카이브로 묶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삶을 핑계로 바카라쓰기를 미룰 수 있었던 시간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고 나니 전혀 다른 질문이 생긴다.
가장 원했던 것을 이미 얻었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더 성공해야 할까?
아직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온 우주의 그 누구도 답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도리가 없다. 늘 하던 대로 이미 일어난 일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수밖에. 쌓아놓은 글의 분량을 보니 짧게 끝날 일은 아니다. 출간 준비로 다시 바빠질 내년 봄까지 신나게 놀 거리가 생겼다는 말이다. 아카이브 작업이 끝날 때쯤이면 내가 그 고생을 하며 바카라을 만든 이유도 조금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바카라과 삶이 함께 흐르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아! 바카라으로 뭘하고 싶어질 지가 아직 미정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애뜻하다. 천신만고끝에 산달을 받은 내 새끼, 기회있을 때마다 자랑해야지! 개봉박두라고 하기엔 아직 7개월이 넘게 남았으니 아직은 얼굴만 살짝~^^
52세, 결혼 23년 차, 육兒 22년 차, 육我 17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