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되는 꿈, 꿈이 되는 삶
꿈을 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거실에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서영이인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 전화가 끊겼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을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만져보며 한참 전화기를 고치고 있는데 이모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애 전화도 안 받고 뭐 하고 있냐고.
그 옆에 서영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서영이가 아니었다. 서너 살쯤 된 어린아이였다. 땀에 흠뻑 젖고 엉망이 된 채 울고 있었다. 아이가 길에서 너무 오줌이 마려웠는데 엄마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단다. 결국 참지 못하고 옷에 오줌을 싸고 울었다고 했다.
나는 설명하려 했다. 전화기가 고장 났다고. 나도 계속 고치고 있었다고. 일부러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그러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지금 이 변명이 누구에게 필요한 거지?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지?’ 그리고 가슴이 무너졌다.
내가 뭘 놓치고 있지?
그 생각과 함께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요즘 다시 바깥일이 재미있어진 내가 혹시 서영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왜 꿈속의 서영이는 서너 살 아이의 모습이었을까.
현실의 서영이는 이제 자기 인생과 처음 제대로 직면하고 있다. 잘되지 않는 것도 경험하고, 원하는 것과 현재 자기 위치 사이의 거리도 발견하고, 그 거리를 어떻게 건널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혹시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여전히 ‘내가 돌보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어린아이’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서영이보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통과하며 여기까지 왔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오히려 그런 시련들 덕분에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가 왜 아이에게는 자신의 삶을 감당해 낼 힘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이제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이의 과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힘을 믿으며 곁에 있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는 그것이 '엄마의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꿈속의 어린 서영이가 다시 보였다. 혹시 저 아이는 서영이만이 아니라 내 안의 어린아이이기도 했던 것은 아닐까. 전화는 계속 끊겼다. 아이는 엄마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를 전할 방법이 없었다. 아주 기본적인 욕구조차 전하지 못한 채 오래 참고 있었다. 결국 다른 어른의 손에 이끌려서야 엄마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내 안에서도 오래 잠잠했던 욕망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놀고 싶다. 여행하고 싶다. 돈도 벌고 싶다. 몸도 만들어보고 싶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예전의 기쁨들을 다시 만나보고도 싶다. 물론 그 모든 욕망을 당장 실현해줄 수는 없다. 이미 지나가서 다행인 기쁨을 무리해서 다시 살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없는 척 해야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 안의 아이가 신호를 보내면 잘 들어두었다가 가장 좋은 타이밍에, 가장 친절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도와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도 목소리가 닿지 않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다른 어른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때까지 참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어린 아이의 눈을 보며 말한다.
다 들어줄게. 충분히 들어줄게.
그렇다고 네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겠다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네 목소리는 놓치지 않을게.
너를 혼자 울게 하지 않을게.
둘째인 서영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작정을 하고 내 안의 아이를 기르기 시작한 지도 18년 차를 맞는다. 그러니까 두 아이는 비슷한 속도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인 내 안의 아이도 여전히 나이보다 훨씬 늦자란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나니, 아이를 보는 눈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18년 전『엄마의 육아휴직』초고를 쓰며 붙잡았던 공자님 말씀이 떠올랐다.
노자안지 老者安之 붕우신지 朋友信之 소자회지 少者懷之.
노인은 편안하게 하고, 벗에게는 미덥게 하고, 젊은이는 감싸준다.
그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전인적인 인간관계란 그 사람 안에 있는 다양한 인격체와 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썼다. 내 안의 각각의 존재를 저마다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보듬어줄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며, 나 자신을 포함해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이 '사랑의 기술'을 정성을 다해 배우고 익혀가겠다고 했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이 다짐은 변함이 없다. 내가 그렇듯 서영이 역시 덜 자란 마음과 성숙해진 마음,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다양한 마음들을 품고 오늘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린 마음이 남아 있다고 어린아이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성숙하고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고 보살핌이 필요 없는 것도 아니다. 18년을 길렀는데 여전히 돌봐달라고 칭얼대는 어린아이가 남아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저 그렇게 보낸 시간들 덕분에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어른스럽고 의젓한 마음으로 꽉 채우는 것이 치유와 성장이 아니라는 것을 잊는 시간이 점점 줄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때마침 찾아온 꿈 덕분에 안팎의 서영이를 행복한 어른으로 길러내기 위해 배우고 익히고 싶은 사랑의 과제를 다시 기억해 낸다. 꿈이 던진 질문에서 시작된 탐구가 현실의 서영이와 내 안의 욕망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 달라진 관점으로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또 새로운 질문이 생겨나겠지. 그때는 또 이렇게 꿈을 탐구하는 시간의 기록을 가이드 삼아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그렇게 오늘도 내면과 현실이 내 몸이라는 공간에서 소통하며 서로의 리듬을 맞춰간다. 내면탐구와 현장실험, 그리고 다시 내면탐구와 현장실험. 이 끝없는 순환을 나는 살림명상이라고 부르고 있었구나.
식구들을 각자의 현장으로 배웅하고 다시 바카라상에 앉아 생각한다. 꿈이 삶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꿈 덕분에 조금 더 분명해졌다. 내게 살림명상이란 꿈을 삶으로 만들어가는 수련이고, 살림탐험은 그 수련과 함께 내 삶을 개척해가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탐험을 멈추고 살 수 있을까?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삶을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사는 나를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52세, 결혼 23년 차, 육兒 22년 차, 육我 17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