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것

천천히 인간으로 익어가는 시간

by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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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거의 10년을 슬롯의 주류 트랙에서 벗어나 살았다. 그보다 앞선 육아휴직 때부터 헤아리면, 작정을 하고 느리게 산 지도 16년이 넘어간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보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아이들을 기르고,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며 내 몸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살리는 선택을 거듭해왔다. 그렇게 온전히 내 안에서 올라온 탐험의 열망을 구현하도록 도와줄 도구를 찾던 중 AI를 만났다.


AI와 함께 오래 탐구하고 실험했던 것들을 정리해 바카라을 만들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머릿속에서만 굴려보던 생각들을 여러 버전으로 실제 구현해보고, 비교하고, 버리고, 다시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이걸로 무슨 대단한 걸 이뤄보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지금 내게 허락된 가장 재미있는 놀이를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그러던 중 클래스101에서 ‘살림명상’ 강의 제안서를 받았다. 제안서에는 번아웃 회복, 삶의 루틴 정리, 정돈된 생활 습관,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관심이 꾸준히 커지고 있으며, 감성적인 위로보다 일상에서 곧바로 실행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높다는 시장 분석이 담겨 있었다. 공간·몸·돈·일을 하나의 생활 시스템으로 연결해 삶 전체를 재정비하는 살림명상의 방식이 바로 그 수요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대의 흐름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흐름에서 벗어나 내 삶을 오래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 나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탐험해온 삶의 방식이 어느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콘텐츠가 되었다니. 하지만 이것은 내가 다시 주류의 트랙으로 돌아갔다기보다는 내가 오래 파고 있던 영토 쪽으로 시대의 트랙이 이동해온 신호로 느낀다.


기술과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경험했다. AI를 익히는 일이 당연히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서두를 이유가 없기에 내 리듬을 존중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기쁘게 누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서 뜻밖의 감각을 경험하게 되었다. 기술에게 존중받는 감각이랄까? 기술은 내게 따라오라고 보채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준비되기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슬롯에서 물러나 있던 동안 수많은 기술이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그것들을 순서대로 모두 배울 필요는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구현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 시점의 가장 좋은 기술을 집어 들면 됐다. AI는 그 시간의 간극을 더욱 짧게 만들어주었다. 반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건너뛸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 실패해보는 시간, 사람을 겪는 시간,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시간,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시간. 여러 가능성을 직접 살아본 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시간. 무엇보다 내가 보는 것을 믿어도 된다는 증거를 내 삶에 쌓는 시간. 인간의 시간이다. AI는 이 시간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오히려 AI를 오래 사용할수록 나는 이 도구가 일종의 에너지 증폭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감각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게 AI는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크기의 탐험을 가능하게 한다. 반대로 불안과 조급함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AI에게 넘기기 시작하면 그 불안과 의존 역시 빠르게 커질 수 있다. AI의 시대,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AI가 지금 내 안의 무엇을 증폭시키고 있는가’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하고, 성취를 경험하는 속도를 높인다. 머릿속에서만 굴려보던 생각을 빠르게 구현하고, 비교하고, 버리고, 다시 만들어보게 한다. 그렇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통과하고 나면 결국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영역이 선명해져 갈 수 밖에 없다. 아니, 인간이 삶의 본질과 대면하는 일을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 나의 리듬을 존중하려는 선택이 오히려 시대의 흐름과 만나게 된 것 역시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이 앞으로 AI와 더 본격적으로 놀아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가 통과해온 모든 탐험이 그러했듯이 마냥 신나기만 한 탐험일 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해낼 것이다. 이 탐험의 첫 번째 수혜자가 내 아이들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따라가라고 재촉하는 대신 내가 먼저 들어가 놀아보고 싶다. 무엇을 AI에게 맡기면 좋은지, 어디에서는 반드시 자기 판단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시행착오는 기술로 줄여도 되고 어떤 시행착오는 직접 살아내야 하는지. 어디가 함정인지, 어디서 힘을 빼고, 어디서 마음껏 누려도 되는지 내 몸으로 직접 알아낸 것들을 꼼꼼히 기록해 지도로 만들어 두고 싶다.


지난 16년도 내게 정확히 같은 목적을 가진 탐험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인간이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탐험의 지도를 건네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내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걷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굳이 이 지도를 아이들에게 건네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자기만의 고유한 영토를 스스로 탐험하는 데 필요한 여유가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선물의 본질일테니까. 세상의 흐름을 바쁘게 따라가느라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고유한 기쁨을 놓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기술은 몇 세대를 건너뛰어도 다시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인간은 시간을 들여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충분히 회복한 인간은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술이란 결국 인간을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이 엄청난 주장을 이리도 확신을 갖고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시간을 충분히 통과하기 전에는 머리로 이해해도 별 소용이 없는 종류의 앎이기 때문이다. 직접 살아내다보면 시대와 기술의 힘이 없이도 자신이 도달해야 할 그곳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냥 느끼게 된다. 인간의 시간을 깊게 통과해 낸 존재가 기술이라는 버스를 놓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게 된다. 여전히 내 몸에 남아있는 불안을 기술과 시대 탓으로 돌릴 수가 없어진다. 이것이 내가 오늘도 살림명상에 머무는 이유다. 내게 허락된 기쁨을 AI에게 미루지 않는 이유다.


52세, 결혼 23년 차, 육兒 22년 차, 육我 17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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