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시소 한남
전시장 입구부터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멀리서 매미소리와 어딘가 여름의 향기가 느껴지고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름의 감각을 되살아나게 하는 벽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럽네요.
아주 영리한 설계인 것 같습니다.
여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모든 것을 녹일 듯 내리쬐는 햇볕, 귀가 아릴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 그리고 혀끝에 닿는 자두의 싱그러움까지. 저마다의 기억은 다르겠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의 푸름이 청춘의 반짝임과 닮아 있다는 점에는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성률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는 작가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 온 여름의 조각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작가에게 여름은 뜨거운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나던 유년의 감각과 닮았습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은 여름날의 열기와 일렁이는 그늘이 되어 작품 곳곳에 섬세하게 스며들었죠. 작가의 손길이 고스란히 닿은 원화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이 그린 드로잉 등 140여 점의 작품은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여름의 풍경을 생생하게 되살립니다.
맑은 색채로 그려낸 풍경을 통해 오래된 일기정을 들춰보듯 잊고 있던 시절의 조각을 꺼내 보세요.
다시 찾아온 여름, 우리는 그 사이 얼마나 자랐을까요? 이번 전시가 뜨거웠던 우리의 지난 계절을 위로하고, 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걸어갈 내일을 그려 보는 응원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절 우리를 꼭 닮은 여름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성률은 맑고 투명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로 풍경 속의 작지만 따스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입니다. 작가는 유독 사라졌거나 언젠가 사라질 공간에 마음이 끌린다고 말합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골목, 그 풍경 속에 자리한 소년과 소녀까지. 성률의 서정적인 시선으로 포착한 이 장면 들은 보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며 희미해진 기억을 선명하게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독창적인 감수성은 SNS 상에서 전 세계 60만 명의 팔로워를 매료시켰습니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졸업 작품이었던 그래픽노블 <여름 안에서〉로 2022년 일본국제만화상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상을 받으며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백예린, 이하이 등 뮤지션의 앨범 아트워크와 유니클로, 에르메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성률에게 그림은 서로를 기억하고 보살피는 기록입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넘어, 우리 모두가 통과해 온 뜨겁고 시렸던 마음의 계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지나 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중인 작가는 계절에 따라 풍경이 변하듯 자신의 변화 또한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번 전시는 또 다른 성장의 시작점에 선 작가가 건네는 인사입니다.
2024년 '뜨거운 햇빛과 서늘한 그늘' 성률 작가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vkifBUGaMbk
전시명: 뜨거운 햇빛과 서늘한 그늘 Sunshine and the Shade
아티스트: 성률 Seongryul
전시일정: 2024. 08. 09 - 2024. 09. 29
전시장소: 알부스 갤러리_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 28길 26
골목을 걷는듯한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홍보 영상에서 잘 나타나 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Gezd3pNZDJU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길 없었던 어느 여름날의 우리를 기억하나요?
그때 우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뛰고 땀 흘리고 울고 웃었을까요?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 작은 것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다했던 시절을 만나보세요.
울지 마, 2023, 종이에 수채화, 25 x 28cm
울지 마
나는 우울한 일이 있을 때면 스스로를 다독이기보다는 다그치는 편이다. 그때도 우울한 일이 있어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세웠지만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무력감이 한없이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원에는 한 소년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고, 그 앞에는 소녀가 분무기를 들고 서 있다.
'울지 마, 울면 쏜다? 그런 무언의 협박 혹은 위로 같은 자세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누군가가 나를 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분무기든 물총이든 그저 무언가가 촉촉하게 적셔주길 바랐는지도.
갈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상하게도 그림을 완성하고 나자 실제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사람들이 이 그림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의 작업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업으로 남았다.
힙스터, 2022, 종이에 수채화, 20x25.5cm
대단원, 2024, 종이에 수채화, 102x126cm
대단원
오후 1시, 창문을 열자 불어오는 봄바람에 산바카라을 나가고 싶어졌다.
아파트 뒷산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뒷산 초입에는 민가가 한 채 있는데 그 집 담 너머에는 성질 고약한 개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컹컹 짖어댄다. 분명 흰색 진돗개일 것이다. 오늘은 조용한 걸 보니 낮잠에 빠진 모양이다. 나는 초입을 올라 주민들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운동기구들을 기웃거리다 철봉을 두세 번 깔짝댔다. 그 옆으로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산을 더 오르는 길과 반대편 마을로 내려가는 길.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을 쪽을 택했다.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내려가자 버스 종점 표지판과 함께 지어진 지 제법 오래돼 보이는 누런 콘크리트의 낡은 연립 주택이 모여 있었다. 모두 1층짜리였고 작은 개별 텃밭이 딸려 있었다.
그 앞으로 공용 텃밭도 있었는데 주민들이 손수 가꾼 화분이 100여 개 넘게 모여 있었다. 식물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종류가 다양했다. 텃밭에는 작은 식물이 심겨 있었다. 어떤 텃밭에는 페트병으로 만든 바람개비가 봄바람에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플라스틱 봉을 세워 만든 빨랫줄에는 색색의 티셔츠가 걸려 섬유유연제 냄새를 풍겼다. 거대한 산을 배경으로 두어서 인지 분위기는 한층 정겨웠다. 낡았지만 정성스레 가꾸어진 동네를 둘러보며 한여름에 오면 분명 더 멋있을 거라 생각했다. 몇 달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재건축 예정지였던 것이다. 그 많던 화분은 모두 부서져 있었고 온 벽과 문마다 새빨간 스프레이로 휘갈긴
'공가'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언덕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모든 집들이 '공가'로 비어버린 풍경은 그야말로 지구 멸망 이후의 분위기를 풍겼다.
시간이 멈춰버린 어느 집 계단에 앉아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곳의 정류장에는 버스도 오지 않는다.
유에프오, 2025, 종이에 수채화, 27.5 x 35cm
점심시간, 2024, 종이에 아크릴, 27x34cm
반사, 2022, 종이에 수채화, 24x30.5cm
아침 햇살, 2025, 종이에 수채화, 27x33.5cm
화단, 2025, 종이에 수채화, 28x36cm
화단
그래픽노블 〈여름 안에서〉를 제작할 당시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에피소드를 그린 적이 있다. 고양이가 숨어있을 법한 곳을 찾아야 했기에 평소에는 가본 적 없던 아파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당시 나는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생각보다 화단이 우거져 있었고 길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한 번은 화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 아파트 뒤편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통로를 지나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전혀 정리되지 않은 들꽃과 잡풀이 뒤섞인 정글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풀 무더기 속에는 오래전 버려진 벤치와 놀이터의 잔해가 섞여 있어 마치 인류가 사라지고 남겨진 풍경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여전히 삶은 이어지고 있었다. 잡초 더미를 뚫고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고양이를 위해 마련해 놓은 사료와 물이 햇반 껍데기에 담겨 있었다.
껍데기는 오래되어 보였지만 내용물은 비교적 깨끗해 누군가 자주 다녀 가는 듯했다. 그곳만이 아니었다. 화단 깊숙한 곳곳을 탐방해 보니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아파트 단지 내의 고양이들이 통통하고 튼실해 보였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화단 안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색달랐다. 늘 인도로 다니며 화단을 바라보는 것에만 익숙했기 때문에 같은 장소임에도 안에서 밖을 보는 풍경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화단의 수풀 속에 서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풀 소리가 나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그 이상의 곤란한 일이 벌어질까 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는 사이 나는 어느새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숨긴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그림자 표현이 아주 예술입니다.
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 빛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한 그림자가 만들어집니다.
게다가 그 그림자는 녹색과 하늘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회색이 아니죠.
실제 원화를 보면 그런 미묘한 색감들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어 공간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납니다.
매미들, 2023, 종이에 수채화, 20x25cm
개를 찾습니다, 2024, 종이에 수채화, 28.5x2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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