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X] 도장

[방구석5분혁신.초단편소설]

도장을 찍는 데는 삼 초가 걸렸다.

교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일본식으로 바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선생만 남았습니다.”

나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안 하면요?”

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카라상 위 출근부를 덮었다.


어젯밤 아내가 쌀독을 보여줬다. 바닥이 보였다.

여덟 살 딸은 밤새 기침을 했다.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기 싫었다. 어렵게 얻은 자리였다.

사람들이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았다.


몇 달 전 친구 하나가 학교를 떠났다.

“나는 못 하겠다.”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얼마 뒤 잡혀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냈다.

인주를 묻혔다.

꾹.


그날 저녁 딸은 죽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십 년 뒤, 딸이 낡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아버지.”

종이를 보자마자 알았다.

내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 도장이 있었다.

“아버지가 찍은 거야?”

“그래.”

딸은 한동안 종이를 들여다봤다.

“그땐 다들 그랬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친구의 빈 바카라상이 떠올랐다.

딸도 더 묻지 않았다.

종이를 접으려다 다시 폈다.

“왜 그랬어?”

쌀독 때문이라고 말하려 했다.

기침하던 너 때문이라고.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자리도 잃기 싫었다.

겁도 났다.

어느 것이 더 컸는지는 이제 나도 알 수 없었다.

딸은 한동안 종이를 바라보다 바카라상 위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현관문이 닫혔다.


나는 서랍에서 오래된 도장을 꺼냈다.

손잡이는 닳았지만 이름은 그대로였다.

종이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도장도 있었다.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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