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동물농장]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21세기 동물농장에는 나폴레옹(돼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굳이 광장에 서서 연설할 필요도 없다. 누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어떤 말 앞에서 손가락을 멈추는지는 이미 데이터가 알고 있다. 권력은 명령보다 추천으로 움직인다. 선동은 연설보다 피드에서 반복된다.
스퀼러(돼지)도 예전처럼 혼자 바쁘지 않다. 지금은 수많은 작은 스퀼러가 있다. 정치인이 한마디 하면 지지자들이 먼저 그 뜻을 해설한다. 불리한 사실에는 맥락을 붙인다. 모순에는 사정을 붙인다. 실패에는 다른 바카라임자를 붙인다. 권력은 변호인을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다. 팬덤이 알아서 무료 변론에 나선다.
양 떼(양)도 예전과 다르다. 모두 같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각자 다른 화면을 본다. 화가 많은 양에게는 더 화낼 이유가 도착한다. 불안한 양에게는 더 두려워할 이유가 배달된다. 서로 다른 현실을 보고 있으니 대화는 점점 어려워진다. 상대편은 틀린 사람이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문제가 생기면 스노볼(돼지)이 어김없이 소환된다. 경제가 나빠져도, 정바카라이 실패해도, 여론이 흔들려도 누군가는 바카라임을 떠맡아야 한다. 전임자일 수도 있고 반대 진영일 수도 있다. 언론이나 관료, 기득권일 수도 있다. 원인은 복잡하다. 희생양은 하나면 된다. 그쪽이 설명하기 훨씬 쉽다.
정당성이 필요할 때는 늙은 메이저(수퇘지)가 불려 나온다. 이미 죽은 지도자의 뜻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논에 물 대듯 맘대로 해석한다. 우리가 진짜 계승자라고 말하고 상대편은 그의 정신을 저버렸다 공격한다. 죽은 자는 쓰기에 편리하다. 말이 없어서다. 말을 바꾸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문장으로 다시 살려낼 수 있다.
복서(말)는 여전히 농장을 떠받친다. 예전에는 몸으로 돌을 날랐다면 지금은 클릭과 공유와 댓글을 나른다. 화가 나서 누른 영상도, 상대를 조롱하며 남긴 댓글도, 확인하지 않고 퍼 나른 게시물도 모두 기록된다. 나는 정치에 참여했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은 체류시간이 늘었다고 계산한다. 분노조차 누군가에게는 매출이다.
벤저민(당나귀)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는 표정을 짓는다. 저쪽이나 이쪽이나 똑같다고 말한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사람을 가두는지 알고, 정치권이 갈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냉소는 꽤 지적으로 보인다.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까지 제공한다.
이 농장의 묘한 점? 누가 주인인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정치권은 갈등을 동력으로 삼고, 플랫폼은 갈등이 오래갈수록 이익을 얻는다. 지지자는 믿고 싶은 정보를 찾아 퍼 나르고, 상대편은 그것을 보고 다시 분노한다. 누군가 계획하고 지휘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절로 굴러간다. 보이지 않는 손이 따로 없다.
그래서 대중을 향해 양처럼 굴지 말라고 꾸짖는 것은 너무 납작한 진단이다. 왜 그 구호가 내 화면에 반복해서 나타났는지, 왜 분노할수록 더 많은 분노가 배달되는지, 누가 이 싸움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는지부터 봐야 한다. 개인의 판단을 탓하기 전에 판단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21세기 동물농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권력? 얼굴 없는 권력이다. 나폴레옹(돼지) 한 마리를 끌어내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명령한 사람은 없는데 모두가 비슷하게 움직인다. 바카라임질 사람은 없는데 누군가는 계속 이익을 얻는다. 농장이 스스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권력은 가장 안전해진다.
그러니 이제 나는 어떤 동물인가만 살펴서는 부족하다.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누가 내가 볼 세상을 골라주는가. 누가 내 분노가 오래가기를 원하는가. 이 갈등이 끝나지 않을 때 누가 가장 많은 권력과 돈을 얻는가.
정작 가장 안타까운 존재는 따로 있다. 악의를 품은 권력자는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얻는지 안다. 더 불쌍한 사람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자기 돈과 시간, 감정과 영혼까지 갈아 넣는 사람이다. 정의감은 넘치는데 그 정의가 누구의 프레임 위에 세워졌는지 묻지 않는다. 자신은 불의와 싸우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보다 열심히 나폴레옹(돼지)의 농장을 떠받친다.
악의는 경계하기 쉽다. 정의는 경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성이 빠진 정의감은 때로 권력이 가장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연료가 된다. 울타리를 만든 사람보다 더 열심히 울타리를 지키면서, 자신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21세기 동물농장이 완성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새삼 놀랍다. 조지 오웰의 깊은 통찰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짝반짝 빛이 난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