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불교철학과 맥락경영]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바카라상 위에 사과 하나가 놓여 있다. 눈에는 사과가 먼저 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사과라는 독립된 존재가 있고, 흙과 햇빛, 농부와 시장은 그 존재를 둘러싼 배경이라고.
불교의 연기(緣起)는 이 익숙한 생각을 흔든다. 지금 내 눈앞의 사과는 혼자 성립하지 않는다. 햇빛과 비, 흙과 씨앗이 있었다. 농부의 노동이 있었다. 유통망과 구매자가 있었다.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맞물려 지금의 사과가 내 눈앞에 있다. 어느 하나만 떼어놓고는 이 사과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과를 독립된 존재로만 보는 것과 그것을 성립시킨 관계와 조건까지 함께 보는 것은 현실을 읽는 방식부터 다르다. 최근 AI와 데이터 분야에서 주목받는 ‘온톨로지’가 흥미로운 이유다.
온톨로지는 존재론을 뜻하는 철학 용어다. 컴퓨터과학에서는 특정 영역의 개념과 속성, 관계를 구조화한 모델을 가리킨다. 정부와 기업의 의사결정을 돕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는 온톨로지를 자사 플랫폼의 핵심 구조로 삼아 사람과 제품, 계약과 공장, 사건과 행동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구조화해 조직의 맥락을 드러낸다.
물론, 불교의 연기와 팔란티어의 온톨로지는 출발점도 목적도 다른 개념이다. 다만 둘을 함께 놓고 보면 익숙한 경영 습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대상을 너무 쉽게 독립된 실체처럼 다룬다. 그렇다고 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새로운 실체인 것도 아니다. 관계 역시 여러 원인과 조건에 기대어 성립해서다. 중요한 건 어떤 대상도 그것을 성립시킨 원인과 조건을 빼고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저성과자. 우량고객. 핵심인재. 인기상품. 문제 부서. 이름을 붙이는 순간 대상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된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보는 게 문제다. 해결바카라도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향한다. 조직도는 사람과 부서를 칸으로 나누고, KPI는 성과를 지표로 압축한다. 필요해서 만든 도구지만 거기에만 시선이 머물면 결과를 빚어낸 조건과 상황은 눈 밖으로 밀려난다.
성과가 낮은 직원이 있다. 교육한다. 그래도 안 되면 교체한다. 그런데 업무를 바꾸고, 상사를 바꾸고, 목표와 권한을 조정했더니 성과가 달라졌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저성과자’라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걸까. ‘저성과자’를 문제로 규정한 것부터 잘못이었을 수 있다는 거다.
매출이 떨어졌다고? 영업팀 문제로 규정하면 교육과 인센티브가 해법이 된다. 고객의 변화, 가격, 상품 구성, 유통 채널, 경쟁사의 움직임까지 함께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업팀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가 드러난 자리일 수 있다. AI 프로젝트도 같다. 실패를 모델 성능으로만 설명하면 더 좋은 모델을 찾게 된다. 업무 절차와 데이터 품질, 권한과 바카라임, 사용자의 행동까지 함께 살피면 모델은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
그래서 경영의 질문은 ‘누가 문제인가’에서 멈추면 안 된다. ‘어떤 원인과 조건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는가’까지 나아가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업무와 권한, 평가와 관계까지 봐야 한다. 사람이 원인의 전부가 아닐 수 있어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건은 계속 바뀐다. 지난해의 충성고객이 올해도 우리를 찾아야 할 의무는 없다. 오늘의 핵심인재가 다른 업무와 다른 상사 아래에서도 같은 성과를 낸다는 보장도 없다. 조건에 의존해 성립한 것은 조건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 불교의 연기와 무상(無常)이 맞닿는 대목이다. 경영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틀린 답만이 아니다. 한때 맞았던 조건을 지금도 그대로라고 믿는 일이다.
AI가 기업 현실을 이해할 때도 데이터의 양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데이터가 무엇을 뜻하고 누구의 어떤 행동과 연결되는지 맥락이 필요하다. 온톨로지가 주목받는 이유다. 데이터 각각의 값보다 그 데이터가 놓인 관계와 맥락이 판단의 질을 바꾸기 때문이다.
다시 사과를 본다. 처음에는 사과 하나만 보였다. 이제는 그 사과가 이곳에 있기까지의 원인과 조건이 함께 보인다. 경영 현장의 문제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 지금 문제라고 부르는 그것은 정말 혼자 생긴 문제인가. 아니면 여러 조건이 만나 지금 그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인가. 답을 바꾸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문제라고 부르고 있는가.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