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리더십]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회의 말미, 팀장이 말한다. “기존 거래처 중심으로 밀어붙여봅시다.” 한 직원이 묻는다. “그러려면 지난번에 막혔던 가격 조건부터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은 무례하지 않다. 그런데 팀장의 표정이 굳는다. 지시의 빈틈을 향해 날아온 질문. 팀장은 이내 웃으며 말한다. “좋은 질문이네요. 그건 나중에 따로 보죠.”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간다.
직급으로 누르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겉으로는 좋아 보인다. 문제는 그 조용함의 이유다. 리더가 시대 변화를 포용하여 몸을 낮춘 게 아니라서다. 직원의 질문 앞에서 자기의 실력 없음이 드러날까 봐 몸을 숨긴 것이라서다. 수평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겁한 회피다.
과거의 권위는 직급에서 나왔다. 부장이라는 이름, 임원이라는 명함, 대표라는 자리. 그 완장이 리더의 빈틈을 가려줬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할 수 있었다. 틀린 판단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속으로는 불만을 품어도 직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권위주의의 작동 방식이었다.
이제, 권위주의의 수명은 다했다. 직원들은 더 이상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따르지 않는다. 왜 해야 하는지 묻는다. 근거가 무엇인지 따진다. 어떤 리더에게 이런 변화는 공포다.
리더가 두려워하는 것은 질문 자체가 아니다. 질문이 드러내는 자기 밑천이다. 직원의 반박을 논리로 받아낼 실력이 부족한 게 무섭다. 직급이 가려주던 얄팍한 전문성의 민낯이 회의실 한가운데 드러나는 그 순간이 두려운 것이다.
문제는 리더가 그 두려움을 실력으로 돌파하지 않고 수평이라는 말 뒤에 숨는 데 있다.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한다. “자유롭게 의견 내라”고 한다. 정작 날카로운 질문이 나오면 말을 돌린다. 불편한 반박이 나오면 회의를 정리한다. 소통을 말하지만 검증은 피한다. 존중을 말하지만 바카라임은 미룬다.
수평문화를 가장한 비겁한 리더십은 강압적이지 않다. 대신 도망간다. 피한다. 숨는다. 예전의 폭압적 리더는 적어도 알아보기 쉬웠다. 지금의 회피형 리더는 부드럽다. 친절하다. 웃는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대신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 약한 논리를 바로잡지 않는다. 실행이 불가능한 계획을 멈춰 세우지 않는다. 의사 결정은 지연되고, 불확실은 쌓여간다. 그 피해는 직원이 떠안는다.
젊은 세대는 근거 없는 리더십을 싫어한다. 실력 없는 권위를 혐오한다.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리더?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들킬까 봐 피하고, 결정해야 할 순간에 사라지는 사람이다. 핵심 인재는 이런 조직에 미련이 없다. 떠날 기회만 엿본다.
좋은 조직에는 불편한 순간이 있다. 누군가 “이 계획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누군가 “근거가 약합니다”라고 짚어내는 순간이다. 누군가 “그 판단은 틀릴 수 있습니다”라고 멈춰 세우는 순간이다. 그때 리더의 실력이 드러난다. 질문을 공격으로 간주하고 화를 내는가. 그저 피하기 급급한가. 아니면 근거를 꺼내고, 실패를 복기하고, 논리를 정리하고, 오류를 확인하고, 다시 방향을 잡는가.
진짜 수평문화는 리더가 사라지는 문화가 아니다. 리더가 더 선명하게 검증받는 문화다. 직급으로 밀어붙이지 않되, 전문성의 힘으로 설득하는 문화다. 감정적으로 억누르지 않되, 합리적 기준으로 방향을 잡는 문화다. 권위는 더 이상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 틀렸는지 설명하고, 무엇을 바꿀지 결정하고, 그 결정의 바카라임을 오롯이 지는 리더십에서 나온다.
다음 회의에서 또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근거가 뭔가요?” "기준이 뭔가요?" 그 질문 앞에서 리더는 선택해야 한다. 얼버무리며 도망갈 것인가. 실력으로 답할 것인가. 건강한 수평 문화는 그때 드러난다.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고 근거와 바카라임으로 리더가 다시 답할 때.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