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우리가 더 오래 기억해야 할 것들

[방구석5분혁신.역사]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일제강점기를 말할 때 자주 소환되는 단어가 있다. 친일파다. 누가 일본에 협력했는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를 따진다. 필요한 일이다. 식민통치에 기대 권력과 부를 얻고 독립운동을 탄압한 행위까지 시대 탓으로 덮을 수는 없다. 역사에는 기록이 필요하고, 기록에는 바카라임이 따라야 한다.


다만, 그 바카라임은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세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삶과 선택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적극적 협력과 소극적 순응, 강요된 행동과 생존을 위한 적응을 같은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행위와 근거, 협력의 정도, 얻은 이익과 끼친 피해를 명확하게 따져야 한다. 후손에게 조상의 도덕적 바카라임을 묻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한 일은 그 사람의 몫이다. 죄를 기록하는 것과 증오를 전가하고 확산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여기까지는 역사적 바카라임의 문제다. 정작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다른 쪽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삶이다.


나라가 독립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실제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행동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었다. 체포와 고문, 투옥과 죽음. 생계의 파탄과 가족에게 닥칠 위험. 성공 가능성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독립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독립이 된다 해도 그날을 살아서 맞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왜 배신했냐고?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염석진이 남긴 대사다. 그럼에도 그 높은 문턱을 넘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데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 시대에는 달랐다. 독립을 입 밖에 내는 것부터 위험했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직업을 잃을 수 있었다.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감옥으로 끌려갈 수 있었다.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움직였다.


독립운동가의 위대함을 애국심이라는 말 하나로 설명하면 오히려 그들의 삶이 납작해진다. 나라를 사랑한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분강개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독립을 꿈꾸면서도 가족과 생계를 생각해 움직이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억압이 강할수록 마음과 행동 사이의 거리는 멀어진다. 평범한 사람에게 가족의 생존은 저기 멀리 있는 관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이었다. 독립운동가는 그 머나먼 거리를 건넌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 선택을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을까. 두렵지 않았을까. 가족 생각은 나지 않았을까. 잡혀갈 가능성, 실패할 가능성,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이 될 줄 알았다면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겁한 변명. 그런데도 자기 삶보다 더 큰 무언가를 선택했다.


신념에는 말이 아니라 가격이 붙는다. 그들은 그 가격을 자기 삶으로 지불했다. 이 대목에서 독립운동사는 훨씬 풍부해진다.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는 역사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이 어느 순간 자신의 안전보다 공동체의 미래를 앞에 놓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역사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만 기억해서는 부족하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을 포기했는지, 무엇 때문에 버텼는지, 그 선택으로 자신과 가족이 무엇을 감당해야 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동상과 기념관 속에 멈춰 있던 독립운동가가 살아 있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기억은 그렇게 깊어져야 한다.


독립운동가를 완성된 영웅으로 박제하면 존경은 오히려 멀어진다.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어서 특별한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워서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잃고 싶지 않은 일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이 더 무겁다. 포기할 것이 없는 사람이 목숨을 건 게 아니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데도 더 큰 가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 거다.


역사교육도 이 지점까지 가야 한다.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업적을 시험문제로 외우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까지 했을까”를 물어야 한다. “그 상황에서 무엇을 포기했을까”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독립운동이,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가치가 된다.


슬롯는 무엇을 오래 기억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존경할 것인지 배운다. 역사는 잘못을 밝혀 기록하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동체가 어떤 선택을 귀하게 여기는지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운동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영웅에게 박수를 보내는 행사가 아니다. 인간이 자기 이익을 넘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기억하는 일이다.


마침 광복절이다. 태극기를 다는 하루로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들의 이름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돌아올 보상이 없는데도 움직였던 사람들. 살아서 광복을 맞을지 알 수 없는데도 자기 삶을 걸었던 사람들. 자신이 누리지 못할 내일의 자유를 위해 오늘을 내놓았던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살게 했을까.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하루보다, 이렇게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는 하루. 오늘만큼은 그 이름들을 오래 불러볼 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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