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을 지키다 끝내 자기 자신을 잃는 사람들

[방구석5분혁신.진영논리]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묘한 장면을 만난다. 정바카라 논란이든, 젠더 갈등이든, 연예인 논란이든, 세대 문제든 모두 비슷하다. 서로를 죽도록 싫어하는 두 집단이 쓰는 말과 행동이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것. 상대의 실수는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증거가 된다. 자기편의 실수에는 사정과 맥락을 붙인다. 상대의 거친 말은 혐오다. 자기편의 거친 말은 참다못해 터져 나온 분노다. 상대의 정보에는 출처부터 따지면서 자기편에 유리한 정보는 확인도 하지 않고 퍼 나른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쌍둥이처럼 닮았다. 양 극은 그래서 통하나 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생각이 같아서가 아니다. 판단하는 방식이 같아져서다. 편 가르기가 시작되면 사실보다 소속이 앞선다.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 누가 했느냐가 중요해진다. 상대편에는 원칙을 적용한다. 자기편에는 예외를 허용한다. 상대편의 잘못은 확대하고, 자기편의 잘못은 축소한다. 같은 행동도 우리 편이면 이해할 일이 되고, 상대편이면 규탄할 일이 된다. 원칙은 하나인데 적용하는 기준은 둘이다.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실 자체가 아니라 소속이 되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건 적대가 강해질수록 상대를 닮아간다는 사실이다. 상대의 조롱을 비난하며 더 심한 조롱을 한다. 상대의 왜곡을 바로잡는다며 더 심한 왜곡을 일삼는다. 상대의 집단 공격을 비판하면서 자기편 사람들을 불러 모아 똑같이 공격한다. 적을 이기려고 적의 기술을 배우는 셈이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는 거다. 거울 속 얼굴처럼 좌우만 반대다. 움직임은 같다.


더 큰 문제는 상대를 닮는 동안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했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순서가 바뀐다. 편이 먼저 정해진다. 생각은 나중에 붙는다. 자기편이 공격하면 분노할 이유부터 찾는다. 자기편이 옹호하면 감싸줄 논리부터 만든다. 판단의 주어가 바뀐 것이다. ‘나’가 사라진 자리에 ‘우리 편’이 들어선다.


진영논리의 무서움은 틀린 판단 몇 번에 있지 않다. 진영에 내 생각을 맡긴다는 데 있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진영이 알려준다. 어떤 사실을 믿어야 하는지 진영이 골라준다. 무엇을 조롱해야 하는지도 진영이 정해준다. 사람은 편해진다. 판단하지 않아도 되어서다.


대가는 크다. 자기편의 잘못을 보고도 말하지 못한다. 상대편의 옳은 말을 듣고도 인정하지 못한다. 생각이 달라져도 입장을 바꾸지 못한다. 의견 수정은 변절로 읽히고 내부 비판은 배신으로 취급된다. 입은 내 것인데 말은 내 것이 아니다. 머리는 내 것인데 생각은 내 것이 아니다. 진영의 꼭두각시가 되는 순간이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더 빠르게 증폭시킨다. 신중한 설명보다 선정적인 단정이 잘 퍼진다. 복잡한 맥락보다 단편적인 분노가 더 쉽게 공유된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문장보다 조롱하는 한마디가 더 많은 호응을 얻는다. 논쟁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소속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변한다. 소속은 선명해진다. 나는 희미해진다.


입장이 다른 게 문제일 리 없다. 세상에는 다른 가치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모두가 가운데 설 이유도 없다. 문제는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여전히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있느냐다.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느냐다. 자기편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가. 상대에게 요구한 증거를 자기편에도 요구하는가. 상대의 조롱을 비판했다면 자기편의 조롱도 멈출 수 있는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때 기존 생각을 고칠 수 있는가. 집단의 결론과 자기 판단이 다를 때 입을 열 수 있는가.


그게 안 된다면 어느 편이 옳은지를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게 있다. 지금 이 생각, 정말 내 생각인가.


양 극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건 가운데 서는 일이 아니다. 자기 생각의 주인으로 남는 일이다. 진영이 대신 생각해주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 건강한 슬롯나 공론장이 아니다. 나다. ⓒ혁신가이드안병민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죽도 프로젝트: 다시 가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