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AI시대 문해력]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과거의 문해력은 주어진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었다. 교과서에는 범위가 있었다. 신문에는 발행 주체가 있었다. 바카라에는 저자와 편집자, 출판사라는 검증 장치가 붙었다. 읽는 사람은 글의 의미만 파악하면 됐다.
지금의 정보 환경은 다르다. 검색창에는 서로 충돌하는 주장이 함께 뜬다. 알고리즘은 사람마다 다른 순서로 글을 보여준다. 짧은 영상과 요약문은 맥락을 잘라낸다. AI는 흩어진 내용을 하나의 완성된 답으로 묶는다. 독자는 더 이상 글만 읽어서는 안 된다. 글이 놓인 환경까지 읽어야 한다. 문해력의 뜻이 달라진 이유다.
많이 읽는다고 잘 읽는 게 아니다. 빨리 이해한다고 제대로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 썼는지,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어떤 조건에서 맞는지, 무엇이 빠졌는지를 가려야 한다. 읽기의 본질이 해석에서 편집으로 옮겨갔다. 이름하여 ‘판단 편집력’이다.
편집자는 문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출처를 찾는다. 앞뒤 맥락을 살핀다. 겹치는 내용을 덜어낸다. 서로 충돌하는 주장을 나란히 놓는다. 사실과 의견을 가른다. 빈칸이 보이면 표시한다. 결론이 근거보다 앞서면 돌려보낸다.
AI를 잘 쓰는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질문을 잘 던지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돌아온 답을 해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럴듯한 문장과 믿을 만한 문장을 구별해야 한다. AI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왜 그런 답을 내놓았는지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출처, 맥락, 바카라임이다. 근거를 추적할 수 있는가. 다른 상황에도 적용되는가. 잘못됐을 때 누가 바카라임질 것인가. 이 세 문을 통과하지 못한 글은 정보일 수는 있어도 판단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편리함에는 늘 대가가 붙는다. AI는 긴 글을 줄여준다. 복잡한 자료를 묶어준다. 필요한 초안을 빠르게 만든다. 그만큼 읽는 과정에서 생기던 마찰도 줄어든다. 문장 사이에서 멈추는 시간, 앞뒤가 맞지 않아 다시 읽는 시간, 낯선 주장 때문에 원문을 찾는 시간이 사라진다. 문제는 그 마찰 속에서 판단력이 자란다는 사실이다.
요약문에는 결론이 남는다. 결론이 만들어진 길은 사라진다. 답은 얻었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정보 소비는 빨라진다. 사고 체력은 약해진다.
그렇다고 AI를 멀리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람이 직접 읽을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다. AI는 넓게 읽는 능력을 준다. 사람은 깊게 따지는 능력을 맡아야 한다. 역할을 섞으면 문제가 생긴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