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표는 옳고, 남의 표는 틀렸다는 착각

[방구석5분혁신.리더십]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선거 다음 날 아침. 개표는 끝났다. 숫자는 차갑다. 마음은 아직 식지 않았다. 단체 톡방엔 분노가 흐른다. 타임라인엔 탄식이 쌓인다. 누군가는 말한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질문처럼 들린다. 사실은 판결문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저들은 무지하다. 저들은 이기적이다. 저들은 시대를 거꾸로 돌렸다. 그렇게 패배한 진영의 지지자는 자기가 지지한 후보를 돌아보기 전에 다른 유권자를 비난한다. 내가 믿었던 진영의 한계를 묻기 전에 타인의 표를 심판한다. 상대편을 찍은 사람, 기권한 사람, 우리 진영에서 돌아선 사람, 끝내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올린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유권자라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내 편을 찍지 않은 유권자는 갑자기 미성숙한 존재가 된다. 계몽해야 할 대상이 된다. 치료해야 할 환자가 된다. 설득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꾸짖어야 할 학생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상처 때문이다. 선거 패배는 단순한 숫자의 패배가 아니다. 내가 믿어온 세계의 패배다. 내가 옳다고 여긴 가치의 패배다. 내가 믿고 응원한 진영의 언어가 사람들에게 충분히 닿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이 사실은 쓰다. 너무 쓰다. 그래서 사람은 쉬운 길을 찾는다. 나를 고치는 길보다 남을 탓하는 길이 쉽다.


내가 믿었던 후보가 부족했는가. 내가 퍼 나르던 메시지가 낡았는가. 내가 옳다고 여긴 말이 사람들의 삶을 건드리지 못했는가. 이렇게 묻기 시작하면 아프다. 바카라임의 칼끝이 우리 쪽으로 돌아온다. 나의 확신 쪽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질문을 바꾼다. 우리가 왜 졌는가가 아니다. 저들은 왜 저렇게 어리석은가가 된다.


여기서 패배의 진짜 함정이 열린다. 도덕적 우월감이다. 겉으로는 정의를 말한다. 속으로는 자아를 보호한다. 내 표는 아직 옳다. 내가 믿은 진영은 아직 선하다. 다만 세상이 몰라줬을 뿐이다. 다른 유권자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달콤한 위안이다. 위험한 마취제다.


맞다, 유권자가 언제나 완벽한 건 아니다. 때로는 감정으로 찍는다. 때로는 분노로 찍는다. 때로는 불안으로 찍는다. 때로는 단 하나의 이슈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그게 민주주의다. 사람은 교과서처럼 살지 않는다. 표는 논문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월세 고지서 앞에서 이념은 얇아진다. 대출 이자 문자 앞에서 구호는 멀어진다. 취업 실패 메일 앞에서 거대 담론은 힘을 잃는다. 병원비, 학원비, 전세금, 장바구니 물가가 매일의 정치가 된다.


그런 삶을 두고 쉽게 말한다. '우경화다'. '좌경화다'. '이기주의다'. '무지다'. 참 편한 말이다. 모든 설명을 끝내는 말이다. 동시에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말이다. 한 사람의 표 뒤에는 긴 사연이 있다. 분노가 있다. 체념이 있다. 배신감이 있다. 기대를 접은 마음도 있다. 진영의 깃발에 파묻혀서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없다.


패배한 진영의 지지자는 여기서 자주 실수한다. 자기가 찍은 후보와 진영을 비판하는 일은 자기 표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낀다. 그래서 비판의 방향을 바깥으로 돌린다. 상대 유권자를 향해 쏜다. 중도층을 향해 쏜다. 청년을 향해 쏜다. 노년을 향해 쏜다. 지역을 향해 쏜다. 때로는 자기 진영 안의 건강한 비판자에게도 쏜다.


결과는? 고립이다. 표를 잃은 이유를 찾지 못한다. 표를 더 잃을 말만 쌓는다. 떠난 사람을 붙잡지 못한다. 남은 사람끼리 서로의 확신만 확인한다. 정치는 광장을 잃고 동굴로 들어간다. 우리와 그들. 선과 악. 깨어난 사람과 속은 사람. 바카라임 있는 시민과 무바카라임한 군중. 이 구분은 명쾌하다. 명쾌해서 위험하다. 인간을 너무 쉽게 자른다. 삶을 너무 빨리 지운다.


정치는 원래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나와 같은 사람만 이해하는 일은 쉽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일이 진짜 정치다.


내가 믿은 쪽은 왜 졌을까. 그들이 어리석어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삶을 너무 쉽게 재단했던 걸까. 그들이 배신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먼저 그들의 불안을 버려둔 것일까. 그들이 시대를 거슬렀을까. 아니면 우리가 시대의 바닥을 잘못 읽었을까.


선거는 도덕 시험이 아니다. 시민을 줄 세워 점수 매기는 행사가 아니다. 내 편을 찍은 표만 깨끗하고, 다른 표는 오염됐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의 언어가 아니다. 일그러진 교리의 언어다. 내부 결속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외부 설득에는 독이다.


사람은 자신을 모욕한 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을 무지하다고 부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긴 사람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자꾸 잊는다. 상대를 가르치려는 순간, 상대는 닫힌다. 대화는 끝난다. 내 말이 아무리 옳아도 그렇다. 태도가 틀리면 말은 도착하지 않는다.


패배한 진영이 해야 할 일은 분노의 정리다. 분노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분노에는 에너지가 있다. 문제는 방향이다. 분노가 다른 시민을 향하면 독이 된다. 분노가 스스로의 확증 편향을 향하면 약이 된다.


정말 이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더 선하다는 확신. 저들은 덜 깨어났다는 착각. 우리 편의 패배는 세상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편리한 해석.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유권자는 자기 삶의 조건을 들고 투표장에 간다. 내 일자리. 내 집. 내 아이. 내 부모. 내 빚. 내 불안. 내 분노. 내 체념. 이 모든 것이 표 안에 섞인다. 깨끗한 표도 없다. 더러운 표도 없다. 각자의 삶에서 나온 표만 있을 뿐이다.


졌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다. 진 뒤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패배를 원망으로 쓰면 다음 패배의 씨앗이 된다. 패배를 성찰로 쓰면 다음 승리의 토양이 된다.


남의 표를 탓할 것인가. 남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할 것인가. 답은 거기에 있다. 선거의 답도, 민주주의의 답도, 다음 승리의 답도 결국 거기에 있다. 내 표가 옳은 만큼 남의 표도 옳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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