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AI경영]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오랜 시간 금속 부품을 깎아 온 공장이 있다. 숙련된 작업자들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불량품을 골라냈다. 최근 AI 비전 검사기를 들였다. 기계는 1초에 수십 개의 미세한 결함을 찾아냈다. 며칠 뒤 공장 마당은 쇳가루를 뒤집어쓴 불량품으로 가득 찼다.
AI가 불량품을 양산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사람의 눈을 비껴가던 결함이 한꺼번에 드러났을 뿐. 진짜 문제는 발견된 결함을 처리할 후처리 공정이 30년 전 그대로였다는 거다. 맞다, 뒷단의 낡은 작업대가, 문제였다.
많은 조직이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서둘러 지갑을 연다. 빠듯한 예산으로 AI 알고리즘과 자동화 설비를 사들인다. 하지만 혁신이 멈추는 지점은 따로 있다. AI를 감당할 조직의 뼈대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거다.
영원한 성공 공식은 없다. 과거의 성취가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기계는 실시간으로 학습하며 진화하는 반면, 조직은 여전히 낡은 관행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이 모순을 푸는 첫 단추? 무상(無常)이다. 불교의 무상은 세상 만물이 덧없다는 탄식이 아니다.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라는 애자일 경영론과도 결이 다르다. 무상은 단단해 보이는 기존 방식을 기어코 붙잡으려는 내 마음을 직시하는 일이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일 수 있다는 서늘한 자각이다. 무상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대한 맹신을 조용히 해체한다. 거대한 변화를 온전히 수용하려면, 불변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착각부터 지워야 한다.
세상 어떤 존재도 홀로 떨어져 기능하지 못한다. 불교의 연기(緣起)론은 촘촘한 조건의 그물망 속에 만물이 얽혀 있음을 짚어낸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제 몫을 하려면 흩어진 수기 장부의 전산화,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새로운 권한 위임, 직원의 심리적 방어기제 해소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조직 전체의 맥락을 살피지 않고 시행하는 국지적 자동화는 혼란만 가중시킨다. AI 도구로 신규 수요를 아무리 만들어 내도 관련 부서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소용없다. 낡은 의사결정 체계는 그 병목을 더 키운다. 회사 생태계 전반을 조망하는 연기적 사고가 절실한 이유다.
당장의 숫자에 갇힌 피상적 접근도 경계 대상이다. 단순 인건비 절감을 위한 AI 도입은 짙은 소외와 내부 반발을 낳는다. 불교의 자비(慈悲)가 필요한 대목이다. 자비는 감상적인 동정심이나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다. 이 사업을 통해 직원과 고객의 고통을 덜어내겠다는 리더의 경영 철학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현실적 기준이다.
AI를 쓰는 이유? 직원의 반복업무와 소진을 덜어내고, 시장의 변화를 더 잘 읽어내며, 사람이 더 깊은 판단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다. 직원 수를 줄이고 남은 이들에게 과부하를 떠넘기는 기계적 효율화는 기업의 재무적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인간 존중의 철학이 빠진 기술의 질주는 결국 조직의 쇠락을 앞당긴다.
'AI 시대 경영과 리더십'을 불교 철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논의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방하착(放下着)이다. 진짜 혁신은 무언가를 악착같이 끌어모으는 덧셈이 아니다. 끝까지 집착하던 과거의 권위와 낡은 관행을 미련 없이 내려놓는 뺄셈이다.
AI 도입을 서두르는 마음도 살펴야 한다. 시장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쫓기고 있는가. 비용 절감과 통제 강화의 욕망을 혁신으로 포장하고 있는가. 현장과 고객의 고통을 덜겠다는 목적은 분명한가. 새로운 기술을 온전히 쥐려면 꽉 쥔 주먹부터 펴야 한다.AI는 우리가 그동안 무엇에 매달려 있었는지 조용히 묻는다. 요동치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힘? 더 억세게 쥐는 게 아니다.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필요한 순간 내려놓는 거다. 진짜 혁신은 그 빈손에서 시작된다. ⓒAI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