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진단이 틀렸다!

[방구석5분혁신.AI 글쓰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편집자의 바카라상. 원고 한 편이 놓여 있다. 문장은 매끄럽고, 문단은 반듯하다. 구조 또한 탄탄하다. 하지만 이상하다. 글에 체온이 없다. 쓴 사람의 고유한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에게 묻는다. 이 문장, 왜 남겼는가. 침묵이 돌아온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AI가 썼다는 건 표면적 현상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작가가 자기 문장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AI가 쓴 글은 가짜라는 비판이 많다. 기계의 연산을 인간의 사유로 포장하는 행위는 지적 기만이라는 지적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AI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글의 진정성을 판정하는 시선은 문제 진단의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다. 인간이 직접 썼어도 생각 없이 베낀 문장은 자기 글이 아니다. AI의 도움을 받았어도 관점과 근거와 표현을 끝까지 검토하고 자기 이름으로 바카라임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계 문장으로만 볼 수 없다. 기준은 ‘AI를 썼는가’가 아니다. 생각했는가. 의심했는가. 버렸는가. 고쳤는가. 끝내 자기 이름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기준은 이것이어야 한다.


인간은 맨몸으로 사고하지 않았다. 메모지에 기억을 맡겼다. 계산기에 암산을 넘겼다. 내비게이션에 길 찾기를 위임했다. 철학자 앤디 클라크는 이를 뇌와 몸, 도구가 결합해 하나의 인지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이라 불렀다. 인지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인류의 오랜 지적 생존 전략이다.


image.png


방식은 밖으로 나갔다. 원리는 안에 남았다. 이것이 핵심이다. 외주화할 것은 방식이다. 내재화할 것은 원리다. 도구를 쓴다고 생각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중심을 잃지 않는 도구 사용은 퇴화가 아니다. 확장이다.


글쓰기도 동일하다. 외주화할 영역과 내재화할 영역의 경계를 긋는 일이 핵심이다. 자료 수집, 문장 후보 추출, 맞춤법 교정은 기계에 위임하는 '방식'이다. 문제의식, 관점 설정, 최종 승인의 바카라임은 결코 넘길 수 없는 '원리'다. AI 글쓰기의 위험은 AI가 문장을 만든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인간이 자기 안에 남겨두어야 할 원리까지 함께 내주는 데 있다.


원리의 장악 여부에 따라 AI 글쓰기는 세 가지 층위로 갈린다. 가장 낮은 곳에 '대필형'이 있다. 기계가 생각하고 인간은 이름만 얹는다. 원리를 상실하고 도구에 완전히 종속된 단계다. 그 위에는 '보조형'이 있다. AI가 뼈대를 세우고 인간이 살을 붙인다. 작업 효율은 얻지만 기계가 직조한 평균적 사유의 틀 안에 갇힐 우려가 있다. 가장 높은 곳에 '대결형'이 있다. 기계의 결과물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관점을 벼려낸다. 인간의 뇌와 AI가 공명하며 인지의 확장을 이뤄내는 이상적 구조다.


AI는 방대한 데이터의 평균값을 산출하는 기계다. 파열음을 내는 거친 주장 대신 무난한 문장을 방출한다. 조직 슬롯 역시 뾰족한 의견보다 둥글게 마감된 언어를 선호한다. 진짜 위협은 AI의 평균성이 아니다. 비판받지 않을 수준의 평균적 결과물에 기대어 사고의 바카라임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타협이다. 주체성이 증발한 자리에 남는 것은 납작해진 활자뿐이다.


보고서는 화려해진다. 통찰은 빈곤해진다. 문장은 넘쳐난다. 철학은 증발한다. 좋은 AI 글쓰기는 '딸깍'이 아니다. '저항'이다. 원리를 장악한 저자는 기계의 초안에 순응하지 않는다. 뻔한 비유는 걷어낸다. 빈약한 근거는 해체한다. 논리의 반대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AI가 제시한 평균적 초안을 자기만의 맥락으로 재조립한다.


다량의 텍스트를 신속하게 뽑아내는 일은 인간의 경쟁력이 아니다. 핵심은 판별력이다. 수백 개의 문장 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이 문장이 고유한 나의 관점을 대변하는가. 남겨진 문장의 무게를 내 이름으로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진짜 저자가 드러난다.


도구를 다루는 순서가 잘못되면 AI는 사고의 감옥이 된다. 빈 화면 위에 날것의 문제의식을 쏟아내는 작업이 먼저다. 현상의 이면을 직시하는 고독한 시간을 생략한 채 기계를 먼저 호출하면 생각은 기계의 프레임에 갇힌다. 자신의 맥락을 단단히 세운 뒤에 기계를 대화자로 끌어들여야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


알파고 이후의 바둑계가 이를 증명한다. AI를 거부한 기사들은 밀려났다. 기계 연산을 맹목적으로 암기한 기사들도 한계에 부딪혔다. 판을 주도하는 이들은 기계가 파괴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해부하고 그 원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반상을 창조한 기사들이다.


다시 편집자의 바카라상. 화면 위에는 AI가 뱉어낸 문장들이 도열해 있다. 기계의 연산을 무비판적으로 승인할 것인가. 끝까지 의심하고 부수어 기필코 나만의 수를 쟁취할 것인가. 본질은 사유의 주도권이다.


'AI 시대 글쓰기'에서 인간의 자리? 문장의 작성자가 아니다. 사유의 원리를 통제하는 승인자이자 바카라임자다. ⓒAI혁신가이드안병민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진짜 혁신은 빈손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