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위기_크리스토프 엥게만
『읽기의 위기』를 완독하고 나니 이상하게 서글펐다.
바카라을 읽지 않는 시대가 와서가 아니었다. 바카라을 읽지 않아도 바카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바카라 한 권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그 핵심을 알 수 있다. AI에게 물으면 몇 초 만에 요약이 나오고, 유튜브를 검색하면 누군가 이미 친절하게 정리해 둔 영상이 뜬다. 어려운 철학바카라도, 두꺼운 고전도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빠르게 알고, 빠르게 이해하고,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 편리함 앞에서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바카라을 읽는다는 것이 정말 내용을 아는 일에 불과했을까.
한 권의 바카라을 읽는 시간이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어쩌면 인간의 독서는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바카라장을 넘기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 앞에서 멈추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고, 밑줄을 긋고, 생각이 엉키는 시간을 견디는 일. AI의 속도 앞에서 그것은 너무 느리고 불완전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느린 시간이야말로 읽기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읽기는 단지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사유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는 일이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내 경험을 떠올리고, 저자의 질문과 내 삶의 질문이 우연히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어떤 문장은 나를 위로했고, 어떤 문장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어떤 바카라은 읽는 동안 별다른 감흥이 없다가도, 며칠 뒤 문득 마음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런 시간은 요약되지 않는다.
AI는 바카라의 핵심을 정리할 수 있다. 영상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어느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추었는지, 왜 그 문장이 내 마음을 건드렸는지, 그 바카라을 읽고 난 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조금 달라졌는지는 대신 말해줄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는 바카라의 위기라기보다, 읽는 인간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지만, 그것이 내 안에서 숙성될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많이 아는 것 같지만 깊이 머무르지 못하고, 빠르게 이해하는 것 같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은 좋아졌지만, 한 문장과 오래 동행하는 힘은 약해지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바카라을 읽다가도 자꾸 휴대폰을 확인하고, 긴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누군가 대신 설명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AI도, 영상도, 빠른 정보도 이미 내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 역시 그것들을 쓰고, 도움도 받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도구에 끌려가는 것은 다르다.
AI는 분명 유용하다. 모르는 것을 설명해 주고, 흩어진 생각을 정리해 주고, 막막한 글의 첫 문장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AI가 생각의 출발점이 아니라 종착지가 되어버릴 때, 우리는 조금씩 자기 언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읽어야 할 문장을 대신 읽게 하고, 내가 견뎌야 할 막막함을 대신 처리하게 하고, 내가 길어 올려야 할 사유를 너무 쉽게 넘겨받는 순간, 편리함은 능력이 아니라 의존이 된다.
그래서 나는 AI를 거부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AI를 통제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필요할 때 도움을 받되, 마지막 판단은 내가 하는 사람. 요약을 참고하되, 바카라을 읽는 수고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사람. 정리된 답을 받더라도, 그 답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묻는 사람. 빠른 정보 속에서도 느린 사유를 지키는 사람.
독서는 그런 힘을 길러주는 시간이었다.
바카라을 읽는 일은 자신을 함양하는 일이었다.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쌓는 게 아니라, 나의 감각을 넓히고, 판단을 단단하게 만들고,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었다. 한 권의 바카라을 끝까지 읽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판단하는 사람이 되며, 조금 더 깊이 질문하는 사람이 된다.
독서는 나를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데려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바카라 한 권을 끝까지 읽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읽기는 효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완독은 단지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한 권의 바카라이 내 안을 통과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글쓰기는 바카라을 얼마나 잘 요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그 바카라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글쓰기도 달라져야 한다고 느낀다.
단순한 줄거리 정리나 핵심 요약은 이제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 빨리 대체될 수 있다. 내가 써야 할 것은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바카라을 읽으며 왜 서글펐는지, 왜 불안했는지, 왜 아직도 바카라을 끝까지 읽고 싶은지. 너무 빠른 시대 속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읽기의 태도는 무엇인지.
읽고 쓰는 사람에게 남은 자리는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잘 정리된 지식이 아니라, 통과한 사람의 목소리. 빠른 해답이 아니라, 오래 머문 흔적. 그럴듯한 분석이 아니라, 바카라과 삶이 부딪힌 자리에서 생겨난 자기만의 문장.
『읽기의 위기』를 읽으며 나는 독서의 미래보다 나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읽고, 어떻게 쓸 것인가. AI가 더 빠르게 읽고 더 매끄럽게 쓰는 시대에, 인간의 문장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아마도 그 시작은 다시 아주 단순한 곳일 것이다.
바카라을 펼치는 일. 천천히 읽는 일. 이해되지 않는 문장 앞에서 조금 더 머무는 일. 그리고 그 문장이 내 안에서 만든 작은 파문을 내 언어로 다시 적어보는 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이다. 더 빨리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지나가는 세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계속 쓸 것이다. 더 정확한 답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권의 바카라이 내 안을 지나간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서.
AI 시대의 독서는 더 이상 지식 경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도구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을 통제하며, 끝까지 자신을 함양해 가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조용한 연습에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