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_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의 바카라을 세 권 읽었다.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그리고 이번에 읽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순서가 거꾸로였다.
이 바카라을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걸 덮고 나서야 알았다.
바카라은 어려웠다. 루터와 칼뱅의 신학에서 시작해 권위주의적 성격, 가학성과 피학성, 자동인형 같은 개념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온전히 따라가고 있는 건지 자주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카라을 덮고 나니 머릿속에 남은 건 단 하나였다.
인간은 왜 자유를 두려워하는가.
프롬은 인간이 자연과 하나였던 상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한다. 성경의 언어로 말하자면 낙원에서의 추방이다.
인간은 이성을 얻었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얻었고, 그렇게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그 자유와 함께 딸려온 것이 있었다. 고독이었고, 불안이었다.
여기서 프롬이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
자유는 억압에서 벗어나는 순간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
자유를 얻은 이후가 진짜 문제라는 것. 낙원을 잃은 인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자유를 온전히 견디는 일도 쉽지 않다. 자유는 도착점이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해야 하는 과제였다.
그러니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길 원하고, 강한 권위에 기대고,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줄 집단 속으로 조용히 숨어든다.
프롬은 그것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불렀다.
이 바카라이 쓰인 건 1941년이다.
나치즘이 유럽을 삼키던 시대에 프롬은 물었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독재를 선택하는가. 자유를 짓밟는 체제에 저항하는 대신, 왜 기꺼이 복종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바카라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였다.
그런데 8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이 바카라은 전혀 낡지 않았다. 그게 무섭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인간이 그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바카라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걸린 개념은 '원초적 유대'였다.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았을 때, 공동체와 완전히 합쳐져 있을 때, 거기엔 안정이 있었다. 불안도 없었고 고독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안정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막는 안정이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그 유대를 끊고 나와야 했다. 그게 성장이었고, 개체화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분리된 인간은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혼자가 되었다. 프롬은 그 고립이 인간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묻는다.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한 인간이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카라 속에는 불편한 인간의 민낯들이 나온다.
강한 자에게 복종하고 약한 자를 지배하려는 권위주의적 성격, 자신을 누군가에게 녹여 사라지고 싶어 하는 피학적 충동, 타인을 지배함으로써 공허를 채우려는 가학적 충동. 읽으면서 이건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동인형 이야기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슬롯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 살아는 있지만 자기 자신으로는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사람. 프롬은 그런 인간의 절망이 전체주의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고 말했다.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불편한 사실이 있다.
자동인형은 사실 살기에 가장 편안한 방식이라는 것. 불안하지 않고, 갈등도 없고, 주변과도 잘 어울린다. 프롬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이것을 악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로 그린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프롬이 인간에게 고립 속에서 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말한다.
자발적인 사랑과 연대, 그리고 창조적인 일을 통해 인간은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원초적 유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연결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프롬이 말하는 자유의 긍정적인 얼굴이었다.
이 부분이 유독 오래 남았다.
아마도 그것이 이 무거운 바카라이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바카라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는 누군가의 생각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질문할 수 있는 것,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고독을 견디면서도 사랑과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누군가의 생각을 내 생각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불안이 싫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프롬은 자유를 말했다. 그런데 나는 이 바카라을 읽는 내내 다른 질문을 품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
어쩌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유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