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코리아 2부

다섯 개의 눈으로 다시 읽는 시대의 결

by부소유

2부의 문을 연 것은 김겨울 작가의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대단한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흔해서 누구나 걸어가다 문득 멈춰 서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1부가 도시와 마음을 관측하는 자리였다면, 2부는 그 관측의 렌즈를 역사와 철학, 그리고 고립이라는 세 겹의 시간으로 옮겨 가는 자리였다.


박혜진 평론가가 먼저 이금이 작가의 <슬픔의 틈새>를 꺼냈다. 사할린으로 팔려 간 조선인 소녀 단옥이 야케모토 다마코가 되었다가 다시 단옥으로, 끝내 올가 송으로 불리게 되는 팔십 년의 이야기다. 이름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국적도 세 번 바뀐다. 박혜진 평론가는 이 소설이 흔한 역사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불합리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패배하는 영웅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저 적응한다.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간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삶의 힘이라고 그녀는 짚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뜻밖의 장면이 벌어졌다. 안광복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며 말을 꺼낸 것이다. 소설 속 단옥의 동생 이름이 “광복”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을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안광복 선생님은 자신의 집안도 실향민 가족이라 이 소설을 유독 뭉클하게 읽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소설에 흔한 서사 장치의 악당이 없다는 점을 높이 샀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들어 갈등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을 빌려 말하자면 적응에는 목적이 없다는 방식으로 인물들이 그저 상황에 맞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배운 정신분석의 상식을 뒤흔들었다고 했다.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은 증오나 상처가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기억이라는 것. 사할린 탄광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의 온기가, 소설 전체를 봄날 햇살처럼 물들이고 있다는 그의 감상은 이 자리에서 가장 오래 남는 말이었다.


정재승 교수는 조금 다른 결로 이 소설을 읽었다. 극적인 사건이나 교훈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연대라는 작은 실선들이 모여 거대한 시대를 견뎌냈다는 점에서 이 바카라의 미덕을 찾았다. 이권우 평론가는 다소 날카로운 한 줄 평을 남겼다. “나라를 잃은 백성은 남의 생존 투쟁에 끌려간다.” 식민의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결국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두 번째 화두는 이권우 평론가가 소개한 권석천 작가의 <최선의 철학>으로 넘어갔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가 소크라테스, 세네카, 키케로 등 열두 명의 고전 철학자를 다시 읽은 바카라이다. 이권우 평론가는 이 바카라의 독특함을 설득의 관점에서 찾았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논쟁을 단순한 가치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결과로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논쟁의 손잡이라 부르며, 일방적으로 목소리만 높이는 SNS 시대에 이 바카라이 던지는 질문이 남다르다고 했다. 안광복 선생님은 여기에 자신의 전공인 수사학을 얹었다. 좋은 철학은 논리가 아니라 기세와 에토스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아우라는 오랜 지적 노력의 축적에서만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박혜진 평론가는 이 바카라을 읽으며 좋아하는 노래도 2절까지 듣지 못하는 자신을 떠올렸다고 했다. 모든 것이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에, 소크라테스와 나눌 법한 길고 치열한 대화가 오히려 그리운 유물처럼 느껴진다는 고백이었다.


세 번째로 다시 등장한 것은 일본 정신과 의사 구마시로 도루의 <쾌적한 슬롯의 불쾌함>이었다. 1부에서 이미 스치듯 언급됐던 바카라을 이권우 평론가가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이 바카라이 말하는 “삼중의 덫”을 자본주의, 개인주의, 슬롯계약으로 정리했다. 세 가치 모두 근대가 도달한 성숙의 지점이지만, 이 지점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저출산이라는 결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한 만큼의 만족을 요구하는 개인주의의 셈법 앞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은 점점 더 손해에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였다. 박혜진 평론가는 여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쓴 캔슬 컬처에 대한 에세이를 겹쳐 읽었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문화가 결국 인간의 어둡고 일그러진 진짜 모습을 문학에서마저 지워버리고 있다는 우려였다. 안광복 선생님은 이 논의를 학교 현장의 언어로 옮겼다.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열심히 하게 되는 순간, 오히려 없던 비교와 차별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꼴찌에게도 최선을 요구하는 슬롯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열등감을 만들어낸다는 그의 말은, 쾌적함이라는 단어의 이면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마지막 바카라은 이권우 평론가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였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2퍼센트를 차지하는 슬롯구조적 현상을 다룬 바카라이다. 그는 이것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이 만들어낸 필연으로 읽었다. 박혜진 평론가는 이 지점에서 조심스러운 이견을 냈다. 백 명의 1인 가구를 인터뷰해 쓴 이 바카라이 자신의 삶을 너무 정확하게 겨냥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걸 슬롯구조의 결과로 환원하는 방식에는 다소 동의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녀는 외로움과 고립을 구분해야 한다고 짚었다. 외로움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고립은 슬롯가 개입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정재승 교수는 하버드대학의 팔십오 년 추적 연구를 인용하며, 결국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와 슬롯적 기여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이 바카라이 혼자 사는 삶을 근사하게 그리는 텔레비전 화면과,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없는 대다수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자리의 마지막 말은 이권우 평론가의 몫이었다. 그는 1부에서 정재승 교수가 말한 제4의 공간을 다시 불러왔다. 저자 스스로도 1인 가구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가 제안하는 해법은 제3의 공간을 발명하자는 것이었다. 도서관 같은 공공의 장소가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 1부에서 정재승 교수가 던진 도시의 질문이, 2부의 끝에서 이권우 평론가의 입을 통해 다시 하나의 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를 지나며 나는 한 가지를 확인했다. 이 다섯 사람은 서로 다른 바카라을 읽고 왔지만, 결국 같은 질문의 둘레를 돌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혼자이면서도 연결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은 없었다. 다만 열두 권의 바카라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조금씩 그 답에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