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버튼은 사내공모라고 불렸다

by부소유

숨이 턱턱 막히는 오후, 답답함을 해소해 주는 전체 공지가 올라왔다. 사내공모, 영어로 잡포스팅이다. 어떤 팀의 일이 넘치거나 결원이 생기면 회사가 내부에서 공개 모집을 한다. 경력직 채용처럼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도 본다. 인력을 빼앗기는 팀 입장에서는 좋을 리 없으니, 지원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된다.


공지에는 다섯 팀이 올라와 있었다. 안전팀, 환경팀, 총무팀, 제품팀, 테스트팀. 전부 생소한 팀들이라 한 팀씩 조직도를 검색하며 상상해 봤다. 안전팀은 안전화에 안전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이 연상됐다. 조직도를 보니 여러 팀에서 퇴물 취급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느낌이지만, 안전을 배워 두면 이 회사 밖에서도 요긴할 것 같았다. 환경팀은 유해물질과 폐기물을 다루는 팀. 위험할 것 같지만 역시 배울 게 있어 보였다. 총무팀은 사무, 복지, 인사, 자산을 관리한다. 다만 세 팀 모두 로봇 회사에 다닌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로봇과 거리가 멀었다. 경력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얘기다.


제품팀은 정체 모를 팀이었다. 로봇에 상표를 붙이는 팀인지 작명소처럼 이름을 짓는 팀인지, 조직도를 봐도 감이 안 왔다. 직무 설명은 이해 안 가는 영어로 되어 있었다. 데이터 시트에 따라 제품 구동에 문제가 없도록 대응하는 팀. 그렇다기엔 규모가 제법 컸다. 마지막 테스트팀은 이름 그대로 완성된 로봇을 테스트하는 곳으로 보였다. 완성된 로봇을 도크에 앉히고 시작 버튼만 누르면 될 텐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의문스러운 팀이었다. 왠지 일은 제일 쉬울 것 같았다.


이번 사내공모는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회의에서 눈치 보고 오후에는 조작을 하는 생활이 지겨웠다. 생활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며칠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총무팀 인사 담당 손은정 대리였다. 이상한 기분에 복도의 조용한 곳으로 나가 통화를 이었다. 소식은 좋지 않았다. 다섯 군데 서류에서 모두 불합격. 다만 그녀는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사내공모를 지원한 사람은 처음 봤다며, 진행 중에 결원이 생긴 다른 팀이 있는데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결원이 난 팀은 테스트팀. 내가 지원했던 부천공장이 아니라 금성 공장의 테스트팀이었다. 근무지 이동이 없으니 오히려 좋았다. 좋다고 답했다. 그녀는 이렇게 여러 팀을 지원한 걸 보면 그만큼 나가고 싶은 것 같다며, 꼭 잘 되면 좋겠다는 응원까지 해 주었다.


테스트 그룹은 어떤 곳일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내 시야는 생산부에 갇혀 있었고 인맥도 생산부뿐이었다. 나머지 팀은 모두 생산부를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다. 어찌 됐든 제조회사니까. 조직도를 살펴보니 개발팀, 소자팀, 설계팀처럼 뭔가 중요한 일을 할 것 같은 소규모 그룹들이 있었고, 그 뒤에 또 하나의 사업 부문이 있었다. 테스트 그룹은 그쪽이었다.


면접을 보러 간 건물은 매우 낡았다. K1보다 20년은 더 노후해 보였다. 벽에 금이 가 있고 깨진 유리창도 보였다. 로봇 공장이 아니라 방치된 창고라고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건물 이름은 T1. 숫자 1이 이 건물의 연식을 짐작하게 했다. 미래에서 가장 낡은 것은 언제나 1번이 붙은 것들이다.


문 앞의 거대한 그림자가 인사를 건넸다. 곽정훈. 테스트 그룹의 유일한 입사 동기다. 큰 몸집에 큰 얼굴, 큰 목소리, 돼지털 같은 머리카락과 듬성한 수염이 한 마리 야수를 연상시킨다. 로비의 유리문은 자동문이 아니었다. 뻑뻑한 문을 정훈이가 힘껏 당겨 열었다. 모든 문이 스르륵 열리는 K1과 너무 다른 모습이 어색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1층 사무실은 아담했고, 건물을 둘러싼 정체 모를 오래된 나무들이 실내를 어둡고 습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바빠 보였지만 매우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낯선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각자의 일에 집중했고,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꽂고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훈이는 취조실같이 좁고 어두운 회의실로 나를 안내하고 건투를 빌며 나갔다.


곧 팀장과 파트장이 들어왔다. 태준영 팀장은 50대 초반, 희끗한 직모에 작은 눈과 얇은 입술이 예리해 보이지만 고깃집 사장님 같은 풍모가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아저씨였다. 그는 바지에 손을 닦고 악수를 청했다. 변진섭 파트장은 매우 작은 키에, 초점 잃은 처진 눈과 오랜 흡연으로 회색이 된 입술, 낚시꾼 조끼가 한 몸이 된 40대 중반이었다. 그룹장은 시간이 없어 못 왔다고 했다.


좁은 공간의 면접은 그들에게도 어색해 보였다. 둘은 질문을 서로 미루다가, 전공이 뭐였는지와 코딩을 해 봤는지를 물었다. 코딩 경험은 대학 시절 C 언어 성적을 C 받은 것이 전부다. 그래도 어필했다. 일단 내뱉고 보는 거다. 전자 전공으로 C 언어를 배웠고, 더 어린 시절에는 컴퓨터 학원에서 박물관에나 있을 골동품 운영체제까지 만져 봤고, 프로그래밍은 언제든 배워 보고 싶었다고. 케케묵은 옛 언어의 이력서를, 22세기의 면접관들은 흐뭇하게 들었다.


의지가 엿보인다고, 전공정 경험이 도움 되겠다고, 태준영 팀장은 다음 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라며 다시 바지에 손을 닦고 악수를 청했다. 면접은 5분 만에 끝났다. 살면서 부장급과 두 번이나 악수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회의실을 나와 둘러본 사무실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도크에 로봇을 앉히고 버튼만 누르면 될 텐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의아했다. 같은 금성전자 휴머노이드 사업부 안에서도 본부와 그룹마다 문화가 전혀 다르다. 회사가 클수록, 서로 다른 회사나 다름없는 각자의 문화가 자란다.


생산부와의 이별은 즐거웠다. 즐겁다기보다 행복했다. 퇴사도 아닌데 스스로 팀을 찾아 나간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누가 도와주지도 않았다. 오롯이 혼자 찾아보고 혼자 결정해서 나가는 행위다. 대부분은 벗어나고 싶은 욕망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이 제도를 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권준현 대리에게 제일 먼저 조용히 알렸다. 그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건투를 빌어 주었다. K2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내게 등불 같은 존재였다. 더 좋은 팀에서, 다른 인연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파트장과 팀장 면담은 짧았다. 사내공모로 나가는 팀원은 그들도 처음이라 가서 잘 지내라는 인사뿐이었다. 인사팀의 제도라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붙잡지 않는 것이 잠깐 야속했지만, 붙잡혔다가 세 달을 시달린 선배도 봤다. 후배들은 티 나게 부러워했고 선배들은 부러우면서도 티를 안 냈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첫 출근일 아침 일곱 시 반.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눈이 떠진 김에 일찍 나왔다. 생산부라면 이 시간에도 사람이 바글거렸겠지만, 테스트 그룹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불빛이 빈 사무실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무심코 바카라상들을 둘러봤다. 변진섭 차장의 바카라상은 연필, 종이, 담뱃갑, 마시다 만 캔이 어지럽고 한쪽에 월간 낚시가 놓여 있다. 내 새 사수라는 문구열 과장의 바카라상은 먼지 한 톨 없이 아무것도 없다. 깐깐한 성격이 보인다. 박상군 과장의 바카라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가족사진이 많다. 현진영 대리의 바카라상에서는 담배 냄새가 나고, 일반 서적 없이 업무 매뉴얼만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팔봉 사원의 바카라상은 깔끔함 속에 규칙이 있다. 메모 가득한 포스트잇이 오와 열을 맞춰 붙어 있다. 홀로그램 메모의 시대에도, 사람의 다짐은 여전히 종이에 붙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강정혜 사원의 바카라상은 판타지 세계의 엘프 피규어로 가득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빈자리들을 보며 새 동료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익숙해져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월,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