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이진우

냄새 나지 않는 고등어와 밥솥의 ‘땡’ 소리

by부소유

목요일 저녁, 이진우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이진우의 다시 만난 경제>의 저자 이진우. 내게 그의 목소리는 십 년 넘게 아침마다 귀로만 만나던 목소리였다.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 유튜브 삼프로TV에서 ‘이프로’로 불리는 사람. 무대에 오른 그는 많이들 오셨다는 인사 끝에 곧바로 고백부터 했다. 오늘 투자 잘하는 법을 이야기하겠지만 자기도 투자를 잘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 못한다고, 오늘 왜 그런지 알게 될 거라고.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내게는 그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마이크 앞에서 자기를 깎아 내리는 데 망설임이 없고, 그렇게 깎아 낸 자리에서 오히려 신뢰가 자란다.


강연은 질문 하나로 문을 열었다. 챗GPT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자를 물었더니 워렌 버핏, 벤자민 그레이엄, 존 템플턴, 조지 소로스, 레이 달리오가 나오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냐고 그가 되물었다. 역사상 위대한 투자자라면서 왜 다들 컬러 사진이 있느냐고. 18세기에도, 기원전에도 사람은 살았고 돈은 있었는데 이름난 투자자는 하나같이 20세기 이후에 태어났다. 이 의문을 풀면 투자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날 강연의 뼈대가 거기 있었다.


그가 꺼낸 첫 번째 증거물은 500원짜리 지폐였다. 1973년에 최고액권으로 태어난 그 지폐는 십 년도 못 되어 동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반면 상평통보는 이백 년 가까이 쓰였다. 조선의 엽전은 늙지 않았고 현대의 지폐는 금세 늙는다.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세상에 풀린 돈의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 20세기의 발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 발명의 기원을 헨리 포드에게서 찾았다. 장인 한 사람이 핸들부터 지붕까지 다 만들던 시절, 포드는 도축장에서 고기가 줄지어 흘러오는 장면을 보고 공장을 뜯어고쳤다. 어떤 이는 하루 종일 핸들만, 다른 이는 볼트만 조인다. 차 한 대 만드는 시간이 12분의 1로 줄었고 세상의 돈을 쓸어 담는 거대 기업이 처음 나타났다.


그다음 비유도 와닿았다. 방학 때 고등학생들이 백 원짜리로 화투를 치는 판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판돈이 작아도 밤새 놀 수 있다. 그런데 그 판에 진짜 타짜가 끼어 앉으면 한 시간이면 판돈이 다 그쪽으로 간다. 판을 계속 돌리려면 누군가 돈을 새로 가져와야 한다. 20세기의 경제가 그렇게 바뀌었고 그 돈을 새로 가져오는 장치가 은행이라고 했다. 내가 맡긴 1억은 언제든 찾을 수 있으니 여전히 내 돈인데, 누군가 그 1억을 빌려 가는 순간 세상의 돈은 2억이 된다. 그는 이것을 축구로 바꿔 말했다. 패스를 했는데 내 발밑의 공이 그대로 있다. 공이 두 개가 되고, 전반 15분쯤이면 스무 개의 공이 운동장을 굴러다닌다. 그런 축구가 재미있겠느냐고 묻더니 스스로 답했다. 진짜 재밌다고, 47대 38이 나온다고. 객석이 또 한 번 무너졌다. 그는 역시 비유의 달인이었다.


웃음 뒤에 그는 단점을 숨기지 않았다. 돈이 계속 불어나는 세상은 양극화를 낳고 가끔 금융 위기를 부른다. 그러나 그 둘을 빼면 굶어 죽는 일도, 부잣집 곳간을 털러 창을 들고 나서는 전쟁도 줄어든다. 1992년 그가 대학교 1학년이던 무렵 우리나라에 풀린 돈은 400조 원이 채 안 되었는데 지금은 6천조가 넘는다. 30년 남짓 사이에 16배다. 그러니 30년 전보다 재산이 16배 늘었다면 그냥 보통 하신 거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담담함이 묘하게 서늘했다.


강연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고등어였다. 어릴 적 그는 엄마가 쥐여 준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왔다. 몇 달 전 집 식탁에 오랜만에 고등어가 올라왔는데, 집 안에 비린내가 없었고 가시도 없었다. 전자레인지에 2분 돌리면 되는 대기업 제품이었다. 값을 물어 계산해 보니 시장 고등어의 9배가 넘었다. 남편은 남들 퇴근할 시간에 여기까지 내려와 강연하고 있는데 집에서는 열 배 비싼 고등어를 먹고 있더라는 대목에서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등어를 탓하지 않았다. 사람들 주머니에 돈이 많아졌기에 그런 고등어가 팔리고, 그런 고등어를 파는 사장님이 강남에서 평당 30만 원 월세를 낼 수 있고, 그 월세가 땅값을 만들고, 땅값이 30평 아파트를 30억으로 만든다. 냄새 나지 않는 고등어 한 토막에 현대 경제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고, 좋아지는 만큼 집값은 오르니 가슴은 아프다는 그의 말이 그 고등어 맛이었다. 편리하고, 비싸고, 어딘가 서글픈.


강연의 후반은 우리가 투자에 대해 믿어 온 것들을 하나씩 부수는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에 우리나라에서 투자 잘한다는 전문가 번호가 수백 개 있다고 했다. 전화 열 통이면 30분 만에 그들이 아끼는 종목 열 개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왜 이 더운 날 여기 와서 고등어 이야기를 하고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손에 든 마이크를 들어 보이며, 이걸 위로 던질지 아래로 떨어뜨릴지 맞혀 보라고 했다. 맞히면 기분이 나빠서 반대로 할 거라고. 주가는 결국 사람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데, 사람 마음은 맞힐 수 없다. 워렌 버핏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카콜라로 번 수익은 S&P500보다 연 1%포인트 정도 많았을 뿐이고 같은 기간 펩시가 더 올랐다. ‘콜라’라는 아이디어는 맞혔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데서는 틀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의 처방은 싱거울 만큼 단순했다. 기억을 다 지운 채 100년 전 서울로 떨어졌다고 상상해 보라. 집 한 채도, 바위 하나도, 나무 한 그루도 100만 원이고 주머니에는 300만 원이 있다. 남들이 셋 중 하나씩 고루 산다면 나도 집 하나, 바위 하나, 나무 하나를 사는 것이 투자다. 아는 것만 사서 집 집 집, 혹은 바위 바위 바위로 채우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처음 가 본 뷔페에서 무슨 음식인지 모르겠으면 앞사람이 담는 대로 담으면 된다는 말도 같은 이야기였다. 투자는 남보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남들이 부자가 될 때 나만 뒤처지는 불행을 피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모두에게 나눠 준 기적의 화장품을 바르면 다들 피부가 좋아지지만 남보다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비유도 곁들였다. 한국인의 자산이 부동산 75, 금융 25라면 그렇게 맞춰 두고 생업에 집중하라고 했다. 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로또나 사업이나 도박이나 기도를 하라고, 그건 각자의 선택이지만 도박인 줄은 알고 하라고 했다.


질의응답 시간, 슬롯자가 사전에 받은 질문 하나를 읽었다. 십 년 동안 〈손에 잡히는 경제〉를 듣고 ‘언더스탠딩’도 챙겨 보는 팬인데, 주식과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그만두었다는 사연이었다. 대공황이나 거품 시대처럼 지나고 나서야 해석되는 경제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 내가 쓴 질문이었다. 그가 내 이름 없는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십 년 치 아침이 한꺼번에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대답은 역시 솔직했다. 지나고 나서 해석은 할 수 있어도 미리 맞히는 건 안 된다고, 아까 마이크를 아래로 떨어뜨렸으니 이제 와서 왜 떨어뜨렸는지는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지 않으냐고 했다. 맞혀서 두세 배 버는 사람도 결국 비슷한 빈도로 틀려 반 토막이 나더라고, 길게 보니 별 차이 없더라고. 그러면 경제 공부는 왜 하느냐. 어이없는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사람은 꼭 자기가 모아 둔 돈의 크기만큼 사기를 당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운동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어이없는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 결정을 두고 잘하셨다고, 경제 공부를 때려치운 건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고 했다. 그 시간에 다른 보람 있는 일을 했다면 좋은 일이라고. 마지막에 그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저는 구독자 하나 잃었네. 끊는 건 자유이고 끊기를 권하지만, 대신 주변에 세 명은 꼬셔 놓으라고.


나는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허전했다. 십 년 동안 내게 정보를 전달해준 사람이 그 십 년을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장면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이상한 상실이었다. 그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정직해서, 내가 붙잡고 있던 기대 하나를 조용히 내려놓게 만들었다. 공부를 하면 언젠가 남보다 앞서 무언가를 알아챌 수 있으리라는 기대 말이다.


그는 다른 질문에 답하면서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단 하나의 위험도 걸지 않는 사람이었고, 집도 사지 않았고, 그래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스무 살, 서른 살 때는 왜 저렇게 사시나 싶었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위험이 뭔지 몰랐던 게 아니라 실패하면 아들딸이 불행해질 것을 알고 조금 덜 행복한 쪽을 고르신 것 같다고 했다.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할 수는 있어도 그게 나쁜 선택이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그날 들은 어떤 투자 원칙보다 이 고백이 더 오래 귀에 남았다. 동전 던지기를 열 번 연속 맞힌 사람을 보고 신이라 부르지만 천 명이 던지면 그중 하나는 그렇게 된다는 그의 계산 옆에, 한 번도 동전을 던지지 않은 아버지가 서 있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하며 그는 투자를 밥솥에 빗댔다. 남들이 가진 만큼 골고루 넣고 버튼을 눌렀으면 밥이 되겠거니 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땡 소리가 날 때까지 자기 일을 하라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넣었다 뺐다 하다가 돈을 잃는다고. 그 방법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지금 여기 와 있다는 말로 그는 강연을 맺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밥솥을 생각했다. 밥솥은 김이 빠질 때 쉬익 소리를 내고, 다 되면 짧게 노래를 부른다. 버튼을 누른 뒤 그 소리가 날 때까지의 시간을 진지하게 견뎌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제 공부를 그만둔 지금에 와서야 그의 말이 조금 이해된다. 그만둔 것이 포기가 아니라 뚜껑에서 손을 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다만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나는 이제 덜 불행해질 준비가 된 셈인데, 덜 불행하다는 것이 행복과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질문은 아마 밥솥이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경제의 달인을 만나서 강연을 들어도, 경제는 도무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하지만 단 한가지는 확실이다. 그것은 바로 휘둘리지 말고 지금 생활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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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어문계를 오가며 공부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15년 차 엔지니어이자, 소설을 쓰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읽기와 쓰기, 기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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