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시원한 여름밤
치열하게 소비자를 위한 가치를 만들고 내 아이디어를 실현한다는 의미를 회사에서 찾고, 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왔다. 이삿짐에 자전거, 바카라상 등을 넣고 중국에 혼자 와서 적응하고 신나게 일하고 살아가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 둘과 함께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덧 20여년을 어른의 역할을 하며 살아왔다.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자신했지만, 사실은 조금은 자동적으로 떠밀려온 느낌도 이제 느낀다. 오롯이 내 뜻이고 내가 일구어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렸고, 어쩌면 내가 잘났다고 내가 해냈다고 했던 일들이 사실은 나를 도와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고, 혹은 내게 이미 주어진 것들을 따라왔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를 찾으러 여러 생각을 해오고 어느 정도 해답도 찾은 것 같다. 소비자의 욕망도 또 나의 욕망도 찾고 이해하는 삶을 살 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밤은 이런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밤이다.
교과서에 늘 적힌 우리나라의 좋은 점, 사계절이 뚜렷하다. 너무나 많이 반복되는 말이여서인지, 아니면 태어나보니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이어서 인지,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 후로, 여행으로 또 이주하면서 몇 나라 지방을 살아내 보니,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 인지 알게 되었다.
그게 왜 장점인지는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싱가포르나 여름에는 밤에도 딤섬 찌는 대나무 바구니에 있는 것 같은 심천에서 살다 보면 이해가 간다. 날씨가 온화하지만 난방이 썩 시원치 않은 호주의 겨울을 지내거나 온도는 낮지 않지만 관절에 스며드는 겨울 날씨의 상하이에서 지내다 보면, 아주 차갑지만 따뜻한 방바닥이 있는 한국의 겨울이 그립다.
그 뚜렷한 사계절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밤이다. 따갑게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의 낮도 생기가 넘치지만, 열기가 한 김 식고,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는 여름밤은 그 어떤 날씨나 계절 중에서도 제일인 것 같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까지 들린다면 그 순간이 최고다. 제주의 여름밤엔 구슬이 굴러가는 신기한 소리를 내는 벌레도 있었지.
지금 상하이는 무더운 여름이지만, 오늘 밤엔 태풍이 곧 온다고 해서 인지 시원하다. 아주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한국의 여름밤 같은 느낌이다. 지금 이 밤을 이대로 통째로 유리병에 넣어 놓고 싶다. 나중에 또 찌는 듯한 습도가 높은 밤이 찾아오거나, 기분 나쁘게 추운 겨울밤이 오거나 할 때, 삶의 생기를 조금 잃어버리는 날이 올 때, 이 밤을 꺼내서 그 안에 앉아있고 싶다. 지금 이 느낌 그대로 풀벌레 소리도 살랑 부는 바람도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도 그대로 넣어 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