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연말이라 바쁜 일이 좀 마무리될 때쯤, 오래된 하드 디스크를 연결해 보았다. 오래전에는 가치 있다고 여겼던 지식들은 다시 들춰보면 별 것 아니게 느껴진다. 하지만 몇몇 스크랩해놓은 귀중한 말들은 지금도 생각을 마음을 울리는 소리들이 있다. 이 오래된 것들을 뒤적이기를 잘했다고 여겨진다.
한편에는 나의 오래전에 모습들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나는 참 의미 없게도 여러 장의 내 모습을 담았구나. 지금은 감히 찍지 못할 내 사진들이 쏟아졌다. 오래 전의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더 큰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나의 몸짓은 더 당당했고, 스스럼없었구나. 어떤 옷을 입던 어떤 곳에 있던 나는 더 날 것 그대로의 꾸밈이 없었구나. 젊은 시절의 나는 이렇게 많은 에너지와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었구나.
어린 시절에는 막연히 내가 나이가 먹어가면 지혜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지혜를 더 젊은 이들과 나누며, 깨달음의 지식이 풍요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시간이 세월이 저절로 지혜를 나눠주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일에 몰두할수록, 한 가지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 울 수록, 사실 삶의 지혜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쉼을 꾀할 때, 잠시 일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돌보고, 세상의 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때, 내 통찰은 더 커져갔고, 삶의 지혜는 더 생겨났다.
아직도 마음은 일을 시작할 때, 해외에 발령을 받아 겨우 내 혼자 만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떠한 두려움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고, 그저 성장하려는 의지만으로 가득 찼을 때, 그때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때 보다 내려앉은 눈꺼풀은 나는 이미 노화를 경험하고 있고 그때만큼의 활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은 자명하지만, 그때의 푸르른 마음만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나이의 어울리지 않게 활력이 넘칠 때, 무한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펼칠 때, 나는 아직도 그때의 나임을 기억하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실 행복한 일이다. 내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사실 저절로 획득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나를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야만 그리고 나를 넘어서 주변을 살펴야만 생겨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도 조금은 나의 경험을 나눠줄 수 있고, 나보다 젊은 이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공감해줄 수 있다는 것이 그게 지혜일 것이다. 그 지혜를 얻는 대신 내려앉은 눈꺼풀을 얻거나 조금은 처진 얼굴을 가지게 돼도 어쩔 수 없다. 나의 생각이 깊어지고 조금이라도 이해심이 깊어진 데에 만족하자. 그리고 최대한 행복하며 기뻐하자. 그게 노화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