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뤄버린 평탄한 삶을 살아온 나에게
인간의 뇌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설계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래서 인간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활동이나 몰두가 없으면 이내 지루해지고, 피곤해지고, 활력을 잃는 것일 거다.
이런 변화나 새로움은 바로 나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대체로 혹은 더 많은 정도로 나 자신을 내가 해내는 일이나 창조한 새로움, 그리고 내 주변에 대해 긍정적이다. 이런 측면이 사실 나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 발전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는 최선의 단계에 미치지 않은 모자란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선이란 가장 이상적인 혹은 내가 목표로 하는 나의 모습을 말한다.
어렸을 때, 아빠 엄마가 하는 사업장에 배달되는 보람의 여기에 라는 작은 크기의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는 매일 매일 동기부여가 되는 일화들이 실려있었다. 그 때의 나는 뭐든 손에 닿으면 주변에 있으면 어떤 바카라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게 서점에서든, 집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엄마 아빠의 사업장에서든 손에 잡히는 모든 바카라을 읽었다. 하루 종일 바카라을 읽는게 나의 매일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보람은 여기에 잡지도 즐겨 읽었다. 사실 그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잡지였다. 대부분 미국의 사례이거나 서양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서 동기부여, 좋은 습관 기르기, 혹은 어떻게 하면 매일 매일 최고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에 관한 바카라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그 잡지가 참 좋았다. 뭔가 그 글들을 읽으면 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슬롯적으로 성공한 지혜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고, 새로움을 창조하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 조언대로 몇 가지 행동을 이미 행하고 있었다. 성격이라는게 생활 습관이라는게 아주 명확하지 않을 아주 어린 나이에 나는 나의 성격을 행동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 바카라에 나온 그 여러 슬롯적 의미의 성공한 사람들 처럼 행동했다. 그 덕에 나는 꽤 진취적이고 세상과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믿는 밝은 아이로 자라왔다.
지금 까지 내가 이뤄낸 것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행동 패턴은 지금 돌아보면 이제는 그 바카라에 나왔던 그런 사람들과 그렇게 썩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내 성격을 행동을 발전시켰지만, 아마도 내가 나를 엄청나게 자극할 만한 어려움이나 내가 나를 넘어서야 하는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아서 일 것 같다. 적당한 노력에도 크게 실패한 적이 없고, 성과가 아주 크지 않더라도 배운 것이 있고, 또 미래에 가능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순탄한 나의 여정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게으르지는 않았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도 게으름의 일종인 걸까? 내가 이상적인 나를 더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의 위치에 혹은 지금의 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까? 계획은 목표는 확실해야 하지만, 꿈은 어떤 확실한 경계를 가지면 안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면 언젠가 그 꿈꾸는 것이 이루어 지고, 꿈을 꾸는 것도 끝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아마도 지금이 다시 새로운 꿈을 만들어야 하는 때 인 것 같다. 보람은 여기에, 그 바카라이 다시 필요할 것 같다.
30여년이 이미 흘렀지만, 다시 새롭게 꿈을 꾸어야 하는 그 때의 내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