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런던에서.. Excuse me!

매우 오랜만에 런던 여행

by시원한 바람

2002년 히드로 공항에 내려서 무수한 인파에 휩쓸렸을 때, Excuse me! Sorry! Excuse me!.... 계속 내 귓가를 때리던 말들... 이 나라 사람들은 부딪히면 무조건 사과를 하네, 신기하다. 한국에서는 그저 내가 부딪히건 내가 부딪혔건 그저 휙 지나가버리고 마는데... 새롭네..


2026년 아이들 둘을 데리고 남편이랑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서 또다시 Excuse me! Sorry! 에 휩싸였다. 그래! 맞다. 내가 지금 런던에 왔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의 런던이다. 24년 후 다시 만난 런던 사람들은 그때 그만큼이나 친절하게 길을 비켜주고, 살짝 부딪힐 뻔하면 여전히 Excuse me! 가 들려왔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 서울에서 못 들어본 소리, 그리고 그게 주는 편안함. 이건 분명 환영 인사이며, 이건 낯선 도시에 떨어진 나와 가족들을 존중하는 제스처이리라.


예전에 학생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왔을 때는 분명히 다른 여유가 있었다. 큰 배낭을 들고 지친 몸을 지하철에 꾸겨 넣는 대신, 나는 미리 예약해 놓은 밴을 기다렸고, 아이들과 커다란 밴에 타서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로 편안하게 도시를 구경했다. 커다란 부엌과 푹신한 침대가 있는 멋진 아파트에서 10여 일을 지내며 낸 돈에 비하면 굉장히 좋은 곳을 구했다며 기뻐했다. 물론 파운드가 주는 묵직한 느낌은 잊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파운드가 주는 압박은 크다. 그래도 매일 아침 해가 뜨는 창밖이나 조용한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숙소는 집 같은 편안함을 주며, 잠시 신용카드 통지서에 찍힐 숫자들을 잊을 수 있었다.



내가 알던 그저 스쳐 지나갔던 우중충한 2002년의 런던은 어디 가고, 이제는 내가 아는 섬나라 중 손꼽히게 멋진 곳이 되었다. 하와이, 일본, 싱가포르, 그리고 아이슬란드... 그리고 그중에 런던. 커다란 고풍스러운 건물과 언제나 무료인 박물관과 미술관, 신나는 놀이터와 공원이 가득한 도시가 내가 여기 와봤던가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낮에는 무지 더웠지만, 아침과 밤에는 선선한 바람으로 가득 찼던 멋진 여름날이었다.


특히 다시 찾은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과학 박물관, 자연과학박물관은 정말 그 아카이브가 환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놀이터를 가고 싶어 해서 더 많은 박물관을 가지는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누가 가자면 다시 가고 싶다. 이 도시 곳곳에 있는 대학들을 보면 학생들이 공부하기에는 최고의 도시가 아닐까 싶다. 그저 조금만 걸어 나가면 인류가 모아놓은 최고의 아카이브들이 넘쳐나는 곳, 호기심과 탐구에 대한 욕구가 저절로 생기는 곳이 아닐까 싶다.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는 가이드 투어를 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와 함께 작품과 유물들의 배경을 들려주었다. 런던에서 미술, 박물관학을 공부한 멋진 한국 가이드들이 아이들과 그리고 나에게 박물관 관람을 더 흥미롭게 해 주었다. 과학 박물관에서는 wonder Lab 티켓을 따로 사서 아이들에게 체험하는 박물관을 보내주었다. 4시간이 넘게 떠나기를 싫어했다. 작은 실험들이 가득하고, 흥미롭게 전시를 기획해 놓은 곳, 어른인 내가 봐도 그 어떤 놀이공원 보다도 즐거운 곳이다.

거리에는 줄줄이 열을 지어 견학을 온 학생들로 넘쳐났다. 각 유럽이나 혹은 다른 대륙에서도 온 것 같아 보이는 학생들이 거리에 활기를 더 했다. 그래, 런던은 어느 구석이든 배울 것이 널려있었다. 그 행렬들이 거리에 활기를 더 했다.


너무나도 더웠던 한 낮은 에어컨이 없는 버스와 지하철, 박물관에서 절정이었지만, 그래도 어디나 있는 멋진 놀이터 덕에 아이들은 매일 즐거운 나들이를 나섰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은 몇 시간이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이 녀석들은 어느 도시에 가나 제일 좋았던 곳은 놀이터라고 할 것이 뻔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을 본 저녁도 기억에 남는다. 위풍당당하고 멋지게 노래를 부르던 뮤지컬 배우들을 보면서 한없이 신나고 즐거웠던 뮤지컬, 끝나고 버스를 타러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한 껏 가볍고 신나 보였다. 마치 춤을 추듯 거리를 뛰어다니던 아이들.


멋진 부엌 덕에 아침을 준비하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났고, 정말 맛있던 Gail's bakery 덕에 갓 구운 빵을 매일 먹었다.



예전 회사 상사였던, 상사라고 말하기는 너무나 높은 직급이었던 사람, 로웨나를 만났다. 지금도 놀라운 활기가 넘치는 사람. 홍콩에서 영국에서 가족을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 열정이 넘치는 사람. 멋지다. 일이 몸을 갉아먹음을 인지하고 끝을 맺은 사람. 언제나 진실하고 상쾌한 사람. 지금은 조금 편안해진 사람. 그 존재 자체가 고맙다.


여행이라면 사실 원 없이 해본 것 같다. 호주에서의 히치하이킹 일주, 몇 번씩이나 가던 인도, 대학생 때의 유럽 한 바퀴, 출장으로 매 해 가던 유럽, 뉴욕, 보스턴, 가족들과 간 아이슬란드, 몰디브, 하와이, 일본의 구석구석, 몇 번이고 다시 간 이탈리아 피렌체, 밀란, 코모, 돌로미티, 로마, 친퀘테레 신혼여행이었던 카프리, 파리, 스톡홀름, 스위스, 그리고 매년 가는 싱가포르...


아직도 더 갈 곳이 남았을까 싶음에도 그리고 또 새로워진 런던에 가보니, 사람들이 주는 따뜻한 편안함, 그리고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도시의 구석구석을 보니, 떠나는 게 또 아쉬워졌다. 그래서 누가 런던 어땠어?라고 하면, 꼭 가보라고 하고 싶다. 지금 그곳은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거고 사람들은 또 내가 가는 길을 환영해 주며, Excuse me!라고 외쳐줄 것이다. 런던에 온 것을 환영해!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


참고로 런던 슈퍼마켓 waitrose 장바구니 물가.

한화로 약 4만 9천 원 장본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FF7wiK_KkHE?si=alIUjVA-nW-cGb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