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소설

by정이나

오래간만에 전자바카라을 읽었다. 날 때부터 색채를 보지 못하는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생 남자아이이다. 소꿉친구이자 2년 연상인 이웃의 여자아이는 주인공이 네 살 때부터 함께 어울려주었다. 특징은, 여자아이는 늘 남자아이에게 색깔에 대해 알려주려 했다는 거다. 특정 색깔이 어떤 온도를 지녔고, 어떤 느낌이라는 둥의 자세한 설명을 색을 보지 못하는 남자아이에게 늘어놓곤 했다.


자신이 색을 보지 못한다는 의식 때문인지 원래 성격 때문인지, 남자아이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냥 혼자 있는 걸 즐기게 되었다. 이런 남자아이에게 늘 친한 친구가 생기길 바라는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혼자 있는 남자아이를 끌어내어서 같이 어울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아이는 불치병에 걸려서 죽는데, 여자아이와 늘 붙어다니던 남자아이는 별로 슬픈 느낌이 들지 않는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어느 날 남자아이게게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제목이 쓰인 노트를 건넨다. 그리고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하고 싶어했던 일을 대신 이뤄보기로 한다.


300여 개의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은 '소파에 누워 감자칩 한 봉지 다 먹기'나 '3점슛 4번 연속 넣기', '인형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뽑을 때까지 집에 가지 않기' 같은 소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막상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네잎클로버 찾기'나 '크리스마스 파티 하기', '우리팀 응원하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남자아이는 도와주는 친구들을 만나 생각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깜박 잊고 안 쓴 게 있는데, 바로 남자 아이가 여자아이의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을 대신 이루기로 한 이유이다. 이 미션을 시작한 초기에 남자아이 역시 1년 시한부인생을 선고받는다. '무채병'이라는 병에 걸린것이다. 일반인들이 이 병에 걸리면 볼 수 있는 색깔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간다. 그러다 1년 뒤 죽음에 이르러서는 모든 색을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색을 볼 수 없었던 남자아이는 반대로 색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옅은 파란색부터 하나씩 하나씩,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에는 붉은 색을 볼 수 있게 된다. 비록 죽음을 향해 가는 하루하루지만 색채를 하나씩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남자아이로서는 참으로 경이롭다. 죽은 여자아이가 왜 그렇게 자신에게 색깔을 설명해 주려 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색의 세계는 아름다웠다.


결말을 써 버리면 스포가 되겠지 싶다. 일본 소설답게 내용이 충분히 소소하고 잔잔하고 깨달음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일기를 쓰니까 잘 써지지 않는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 본 어느 여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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