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시간
현재 대학생인 아이는 초등학교 때 5년 정도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초4쯤에는 무슨 콩쿨을 나가 최우수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피아노를 하나도 칠 줄 모른다. 심지어 '가온 도'가 어디 있는지도 헷갈리고, 높은음자리와 낮은음자리도 잘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초저학년 때 보니까 피아노를 그리 즐기지 않는 것 같아서 학원을 그만두게 한 뒤에 방과후에 기타학원으로 오라고 불렀다. 기타를 접하게 해 주고 싶어서였는데, 기타 선생님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아이가 피아노도 같이 배운다고 했다. 초고학년 때는 내가 피아노 배우는 걸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피아노를 계속 배워봤자 인생에 별 소용이 없다는 걸 나도 어릴 때 겪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배운다고 말했고 그렇게 초6까지 다녔던 것 같다.
이후 아이는 중고등학교를 보내면서 피아노는 거의 한 번도 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에 피아노 뚜껑이 열려 있는 걸 본 아이가 자연스럽게 가서 앉더니 앞에 펼쳐진 악보를 보고 쳐 보려고 하는 거였다! 하지만 플랫과 샾이 붙은 악보는 너무 어려워하며 좀 쉬운 건 없냐고 한다. 피아노 초보가 칠 만한 쉬운 악보는 없어서 유키구라모토의 뉴에이지 악보 중에 다장조를 펼쳐 주었다.
양손으로 치는 건 어려워해서 아이가 오른손을 맡고 내가 왼손을 맡았다. 둘이서 박자를 맞추는 것만도 큰일이었다. 음표길이도 다 잊어버린 아이는 되는대로 쳤고, 나는 거기 맞추려고 했다. 나 역시 내가 맡은 파트를 맞게 치는 데 급급했다. 아이가 음표 자리도 모르고 제멋대로 치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도 둘이서 뚱땅거리는 게 재미있어서 한 30분은 그러고 놀았다.
내가 좀더 잘 치는 사람이었다면,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 칠 수 있었다면 그 시간이 더욱 즐거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이게 어딘가!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