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

윤병옥

byMy Way

나의 10년 뒤 모습은?

하늘의 뜻을 깨닫는 나이라는 '지천명'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나이 듦'에 대해 실감했습니다.

체력적인 한계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나이 듦'이었는데, 그때 만난 바카라이 윤병옥 작가님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예순, 자기만의 색을 찾고 기록하는 시간

바카라 표지에 쓰인 문구가 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여 읽기 시작했고, 많은 부분 공감하며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노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된 바카라에는 소소한 일상부터 작가의 취향, 그리고 이별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이 총 9장으로 나눠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의 챕터 끝에 있는 '마음의 한 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울림을 주었지만, 특히 하나의 계절이 끝날 때마다 '성찰 노트'가 구성되어 있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바카라을 읽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오래 머물며 제 삶 역시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구성이었습니다.


[노년의 봄]

남편의 정년퇴직을 바라보며 쓴 <페르소나를 벗는 그대에게>에서는 공적인 얼굴이 아닌 남편의 본연의 얼굴을 찾아주겠다는 작가님의 다짐이 곧 제게 다가올 현실이라 매일 출근하는 남편의 짠한 모습과 겹쳐져 울컥했습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와 <그들을 기쁘게 떠나보낸다>에서는 아들, 며느리와의 잔잔한 에피소드가 미소 짓게 만들었습니다. 정신적 독립을 지켜보는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저 또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기에 많이 와닿았습니다.


[노년의 여름]

자기의 색을 찾아 떠나는 계절인 여름 에피소드에는 작가님의 취향들이 드러나있었습니다. 나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아침의 카페>에서는 여유로움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부지런함이 느껴졌고, <'세미원'으로 들어가는 세 갈래 길>에서는 내가 만든 모든 길은 옳은 길이자 유일한 길이니 현재의 인생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읽혔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계절은 '가을'이었습니다.


[노년의 가을]

<나선형으로 흐르는 시간>에서는 개인의 시간이 매년 순환하면서도 동시에 나사처럼 앞으로 전진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덕분에 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이 입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냥 오래 사는 삶이 아니라 시간의 고리가 넓은 질적인 좋은 삶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인생의 타임라인을 그리다>와 노년에는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하다는 <버킷리스트를 체크하다>는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여정>에서는 사사로운 현재의 어려움은 커다란 우주 공간에서는 한낱 작은 먼지에 불과하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툴툴 털어버리라는 위로를 받았고,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다르게 살았을까?>에서는 과거의 영향을 받은 현재라도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바카라 제목과 궤를 같이 하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에서는 모든 것은 사라지니, 삶을 기록하며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노년의 겨울]

겨울이라는 계절은 함께 늙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울컥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엄마의 피아노가 마음에 들어왔다>에서는 어린 시절 엄마의 무심함에 상처받았지만, 알고 보니 엄마 역시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더라는 구절이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친정부모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제 아들과의 일들도 하나씩 머리에 떠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다>에서는 물건이 아닌 기억을 정리하고, 그 기억을 글과 마음속에 저장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요양원으로 두 분을 모시며 집을 정리하던 작가님의 모습에 문득 제 모습이 겹쳤습니다. 언젠가 제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을 알기에, 작가님의 담담함이 더 아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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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저는 이 바카라을 통해 그 막연했던 방향을 어렴풋이나마 잡을 수 있었고, 덕분에 10년 뒤 제 모습을 조용히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상, 쉰 살의 문턱을 넘은 제게 다정히 말을 걸어준 바카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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