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서
고등학교 시절, 별관 음악실 옆에는 학교를 관리해주시던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학교 안에 주거 공간이 있었는지 조금 의아하지만, 그곳엔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도 한 명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도 음악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교실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창고 근처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저희를 보고 쭈뼛거렸고, 호기심 많은 친구 하나가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꼬마야, 여기서 뭐해?"
아이는 대답 대신 창고 안을 가리켰습니다. 저희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가만히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꺄아~~~~~"
그곳에는 삼색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주 작은 생명체들.
아마 그 꼬마 아이는 저희에게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자랑하고 싶었나 봅니다. 저희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새끼 고양이들의 탄생을 축하해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양이파'가 된 것이.
물론, 아직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양이파'라기보다 '나만 없어 고양이파'이긴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희서 작가님의 <묘하게 다정한 날들>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망설임 없이 구매를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현생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저의 세 번째 '독후감 픽'으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 바카라은 '반려묘와 함께하는 심리치유 에세이'라는 타이틀처럼, 읽는 내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묘하고 다정하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 '함께 산다는 건 자주 다정해진다는 것', '조금 어긋나도 다정하게', '길 위의 다정함 그래서 살아'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 속에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온 작가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글 사이사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고양이 사진과 삽화였습니다. 에세이 내용과 너무 잘 어우러져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작가님의 일상에 고양이가 스며든 장면들은 하나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양이처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작가님의 모습은 제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적당히 살아갑시다' 중에서).
고양이가 싫다던 남편분이 고양이 베리의 손톱을 깎아주고 있는 사진 앞에서는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고양이 싫다던 남편이 고양이랑 같이 자요' 중에서).
루이가 사람처럼 변기에 앉아 소변누는 장면은 놀라움과 함께 큰 웃음을 안겨주었습니다('이 집 고양이, 변기 씁니다' 중에서).
하지만 가장 먹먹했던 장면은 '엄마'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는 베리와 루이의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일찍 엄마 품을 떠나 고양이 화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는 작가님의 시선에 저 역시 코끝이 시큰해지며 깊이 공감했습니다('고양이가 사람 말을 해요' 중에서).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크게 휩쓸리거나 동요되지 않는 고양이의 모습은, 제가 살고 싶은 삶과 많이 닮아 있어 더욱 마음이 갔습니다('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 중에서).
작가님의 삶에 들어온 고양이 베리와 루이는 단순한 반려 동물을 넘어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준 귀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바카라을 통해 고양이의 영민함에 다시 한번 반해버렸습니다. 특히 그 아이들이 건네는 침묵의 위로에 말이죠.
그래서 감히 말해봅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의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에세이 곳곳에 고양이들의 느린 위로가 묻어난 이 바카라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