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돌

25

by라한

25. 돌


"남편이 먼저 돌을 던졌다는 것인가?"

"예. 시어미와 이웃들도 가담했다 합니다."

남해현의 늙은 훈도가 올린 상소였다. 봄에 왜구가 마을을 불태우고 여인 여섯을 끌고 갔는데, 가을에 돌아온 한 사람을 가족과 이웃이 죽였다. 훈도는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에 있었다. 남편이 돌을 들어도 설마 던지랴 여겼다고 했다.

예지는 가슴의 붕대가 답답해 옷깃을 벌렸다.

"현령은 무엇을 했느냐?"

"몸을 더럽힌 여인을 내쫓는 풍속이라 했습니다. 죄를 물으면 온 마을을 가두어야 한다며 더는 고하지 말라 하였답니다."

"잡아간 자들은 멀쩡하고, 돌아온 사람을 죽였구나."

여인은 집에 들여 달라며 아이를 찾았다고 했다. 예지는 더 읽지 못하고 상소를 내려놓았다. 살아 돌아오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집에 닿으면 남편이 문을 열어 주리라 믿었을 것이다.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아직 모릅니다."

"그 집부터 찾아야겠네. 어미를 죽인 자에게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정은은 무릎에 놓인 손을 움켜쥐었다.

"담 밑에서 살아 나왔을 때 소인도 채윤의 집에 가려 했습니다. 그 사람까지 다칠까 봐 돌아섰지만…. 갈 곳은 거기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예지는 정은의 멍들었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날 제 곁에 누가 있었는지에 따라 한 사람은 청사에 앉았고, 다른 한 사람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죽었다.

"수련을 불러 주게. 남해에 보내야겠다."

"돌아오지 못한 다섯도 있습니다. 그분들 소식을 이 여인이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포구에서 만난 사람을 찾아보게 하자. 그 다섯은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

*

이수련은 지도에서 남해현을 찾았다. 바다에 닿은 손끝이 오래 머물렀다.

"권윤과 함께 가게. 훈도를 만나 그날 일을 듣고, 끌려간 여인들의 가족도 찾아보아라."

"현령부터 뵙지는 않습니까?"

"도착한 것은 알리되 그자의 말만 듣고 돌아와서는 안 된다."

수련은 상소를 다시 보았다. 현령은 훈도가 늙어 잘못 보았다고 할지도 몰랐다. 도성에서도 여자라 잘못 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고을 수령이 다른 말을 하면 소인이 어찌합니까?"

"그자가 나에게 와서 해명해야지. 그러니 가서 살펴보고 오너라."

수련은 제 서안으로 돌아가다가 정은을 보았다.

"도목 문서에서 아직 못 끝낸 일이 있습니다. 제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는 마십시오."

"그동안 우리도 일은 해야지요."

"돌아와서도 여기 앉을 수 있느냐고 여쭌 것입니다."

정은은 그제야 웃음을 거두었다.

"앉아야지요. 그대가 없으면 그 일은 누가 합니까."

채윤은 뒤늦게 들어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수련이 어디서 묵을지 묻자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답이 나왔다.

"현령이 방을 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근 고을에 머물 곳과 말을 바꿀 곳을 미리 정해 두십시오. 관패만 보인다고 다 열어 줄 사람들이면 이 상소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가 알아볼 수 있겠는가?"

"아는 훈장이 하나 있습니다. 남해로 드는 길에 제자를 두었다니 서찰을 써 보지요. 다만 그 이름부터 관아에 알리지는 마십시오. 수련 관원이 밖에서 누구를 만났는지까지 현령에게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수련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채윤은 상소를 내려다보다가, 돌아온 여인이 어디에서 배를 내렸는지도 물어 달라고 했다.

"어느 배를 타고 돌아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함께 있던 사람을 포구에서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채윤은 아는 훈장에게 급히 기별을 보냈다. 그 제자의 집에서 묵을 수 있다는 답을 기다리는 동안 수련은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권윤은 스승을 묻고 돌아온 뒤였다.

"의원은 말을 천천히 몰면 된다고 하더군. 갈 수 있겠나?"

"가겠습니다. 여기 있으면 자꾸 스승의 방으로 갑니다. 안 계신 걸 알면서도…."

권윤은 끝을 맺지 못하고 무릎에 얹은 손을 폈다. 예지는 스승을 업어 들것에 눕히던 그 손을 기억했다.

"수련과 다녀오게. 자네가 곁에 있어야 나도 마음을 놓겠다."

"모시고 돌아오겠습니다."

"현령이 막아서거든 바로 기별하고. 둘만 남아 관아의 군사와 맞서서는 안 된다."

권윤은 대답한 뒤 길을 물었다. 예지는 지도를 그쪽으로 돌려 주었다.

*

달래는 출발 전날 수련의 보퉁이를 들어 보더니 도로 내려놓았다. 갈아입을 옷 사이에 바카라과 벼루까지 들어 있었다.

"이걸 메고 남해까지 가시려고요?"

"말에 싣습니다."

"말이 안 가겠다고 하면요?"

수련이 웃으려다 달래가 꺼내 놓는 벼루에 손을 뻗었다. 익숙한 물건을 챙겨야 덜 낯설 것 같았다. 달래는 길에서 쓸 작은 것으로 바꾸어 주고, 옷을 물 먹지 않게 다시 쌌다.

"이런 길을 가 보셨습니까?"

"잔치 따라 옮겨 다닐 때 비를 맞았습니다. 다음 날 입을 옷까지 젖으면 잠들기도 싫어집니다."

수련은 옷을 접는 손을 보다가 짐에서 바카라 하나를 더 꺼냈다.

달래는 제 손가락에서 은가락지를 뺐다. 수련에게 내밀자 수련이 받아들고 눈을 크게 떴다.

"왜 이것을 주십니까?"

"돈이 떨어지면 쓰십시오. 당장 팔라는 말은 아닙니다. 주막에서 여비가 없다고 붙들리면 꺼낼 것이 있어야 하니까."

"그대가 아끼는 물건을 내가 어찌 팔겠습니까?"

"그러면 돌려주러 오십시오. 가지고 가서도 내 것이라고 여겨 주면 됩니다."

수련은 가락지를 끼워 보았다. 조금 헐거워 빠질까 걱정하자 달래가 가는 실을 감아 안쪽을 맞춰 주었다. 수련이 손가락을 구부려 보며 웃었다.

"현령에게 이걸 보이면 잘 대해 주겠습니까?"

"관패도 안 볼 사람이 가락지를 보겠습니까? 부엌에 앉히면 밥이나 먼저 드십시오. 배고픈 채로 싸우지 말고."

"정말 부엌에 앉힐 것 같습니까?"

"그 사람은 안 만나 봤습니다. 다만 그런 꼴을 나는 여러 번 봤습니다."

세녕이 보낸 장옷도 도착했다. 예지는 떠나는 두 사람 앞에서 봉한 서찰을 건넸다. 길에서 만날 수령에게 보일 것과, 훈도에게 직접 전할 것을 따로 짚어 주었다. 수련은 관패를 안쪽에 넣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남은 가족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두 사람 다 조심해라. 기다리겠다."

권윤이 먼저 말에 올라 수련이 내민 짐을 끌어 올렸다. 수련은 발판을 밟다가 치맛자락이 걸려 내려와 다시 묶었다. 달래가 웃으려다 입을 다물자 수련이 먼저 웃었다.

"다녀와서 타는 법도 더 배우겠습니다."

"지금도 배워 가면서 가십시오. 넘어지지 말고."

예지는 두 사람이 골목을 나갈 때까지 서 있었다. 수련이 뒤를 돌아보아 손을 들자, 마루에 남은 사람들이 저마다 인사했다. 달래는 손을 들고도 금세 내리지 못했다.

*

남해현의 사령은 관패를 받아 들고 수련보다 권윤을 먼저 보았다.

"조사하러 오셨다는 관원이 어느 분이십니까?"

"이수련 관원께서 오셨다. 나는 호위를 맡았다."

"여기 적힌 분이…. 이분이시란 말씀입니까?"

수련이 관패를 돌려 달라고 했다. 사령이 망설이는 동안 권윤이 손을 내밀자 그제야 패가 돌아왔다. 현령에게 기별을 넣으러 간 사람은 오래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에 나온 사람은 수련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기다리십시오. 대감께서는 손님을 맞고 계십니다."

"세자 저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밖에 기다린다고 다시 전해 주십시오."

"여인께서 어찌 마루에 올라앉으시겠습니까? 여기 앉아도 말은 전할 수 있습니다."

수련은 더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권윤이 함께 들어가려 하자 사령이 길을 막았다. 여인들 일하는 부엌에 사내가 들어가면 시끄럽다 했다. 권윤은 문밖에 서서 수련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부르라고 말했다.

부엌의 찬모가 손을 씻고 물을 가져왔다. 수련이 일어나 받으려 하자 찬모는 거기 가만히 앉으라며 사발을 앞에 놓았다.

"관복을 입어도 이리 들어오시는군요. 나는 잠깐 길을 잘못 드셨나 했습니다."

"여기서라도 기다려야지요. 아까부터 기별이 없습니다."

"저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화덕 가까이는 옷이 탑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수련은 밖에서 사령이 듣고 있는지 살폈다. 찬모가 눈치를 알아차리고 문을 반쯤 닫았다.

"느티나무 아래서 죽은 여인의 일을 알아보러 왔습니다. 왜구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분인데, 혹시 아십니까?"

찬모는 화덕에 걸린 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알아보러 오셨으면, 대감께는 물어도 못 들으실 겁니다. 이미 끝난 일이라 하셨으니까요."

"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을 아십니까?"

"이가네 며느리라고는 압니다. 이름은…. 그 애를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닷가 마을에 옥분이 어미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딸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그 애는 아직 못 왔고."

"옥분이라고 하셨습니까?"

수련이 몸을 일으키자, 찬모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문밖의 사령이 멀어질 때까지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나한테 들었다고는 하지 마세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찬모는 부엌 밖의 나무를 가리켰다. 그쪽에서 난 길을 내려가면 바닷바람이 드는 우물이 있다고 했다. 수련은 밖으로 나와 권윤과 함께 그 길을 살폈다. 내일은 관아보다 그곳에 먼저 가 볼 생각이었다.

현령은 해가 기울어서야 둘을 불렀다. 수련이 올라서자,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관복부터 훑었다.

"도성에서는 여자도 그런 옷을 입는다더니, 참이었구먼. 세자 저하께서 직접 내리셨는가?"

"여성부의 관원입니다. 보내신 서찰이 여기 있습니다."

"서찰이야 읽으면 되지. 그대는 여기 오래 계실 것인가?"

"돌아온 여인의 죽음을 조사할 때까지 머물겠습니다. 함께 끌려간 여인들의 소식도 듣고자 합니다."

현령은 서찰을 펼쳐 몇 줄 읽고 곁의 서리에게 넘겼다.

"왜구에게 잡혀간 자를 내가 어찌 찾나. 그 일을 알려거든 병영으로 가게. 돌아온 계집의 일은 마을에서 끝냈고."

"돌을 던진 자들에게는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그 사람들을 다 잡으면 마을이 빌 텐데?"

"사람이 죽었습니다. 대감께서는 그 가운데 누구도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현령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일 아침 서리에게 물으라 했다. 수련은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고, 권윤은 그녀가 계단을 다 내려온 뒤에야 관아를 돌아보았다.

"조사를 할 생각이 없군요."

"우리에게 일을 끝냈다고 말하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훈도와 그 어미부터 만나겠습니다."

"묵을 방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채윤 관원이 적어 준 곳으로 가지요. 저 안에서 기다리다 밤이 되면 돌아다니기도 어려우니."

권윤은 문밖까지 나온 사령에게 두 사람의 짐을 내오라고 했다. 사령이 현령의 명을 듣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수련이 자신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답서를 써 두면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사령은 따라오지 않았다.

*

옥분의 어머니는 수련의 관복을 보자 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 애가 왔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수련은 같이 온 권윤을 돌아보려다 멈췄다. 어머니도 그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설주에서 손을 뗐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따님과 함께 끌려간 분들을 알아보러 왔습니다."

"그럼 못 찾았다고 말하러 오신 겁니까?"

수련은 죄송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바깥의 권윤에게 거기 있으라고 하고 수련만 방으로 들였다. 벽에 치마가 걸려 있었다. 다른 살림에는 먼지가 내려앉았는데 그 옷은 자락까지 곱게 펴져 있었다.

"돌아온 분을 아셨습니까?"

"순덕이요. 우리 애랑 물 길으러 다니던 애. 시집가고 나서도 여기 들르곤 했어요."

어머니는 치마를 내려 무릎에 얹었다. 자락의 해진 곳에 같은 빛깔의 천을 덧댄 옷이었다.

"옥분이가 입고 가겠다더니 다른 걸 입었어요. 그날 무슨 옷이었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자꾸 이게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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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기획 및 집필 작가] 글을 씁니다. 계속 써 왔고 앞으로도 씁니다. 쓴 글들을 통해 또 쓰려는 이야기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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