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한여름을 앓다3

by로벤

3화 — 패턴

시립 병원은 정암 시내에서 유일하게 5층까지 있는 건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봐온 건물인데, 그날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려 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엔 방파제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사실이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

대기실엔 노인 몇이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지역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소리가 너무 작아서 자막만 겨우 읽혔다. 나는 그 자막을 읽으려다 왼쪽 눈이 자꾸 화면을 놓치는 걸 느끼고 그만뒀다.

접수처 직원은 나를 보더니

“오늘도 오셨네요” 하고 웃었다. 몇 번을 왔었는지 나는 몰랐다.

진료실은 좁고 조용했다. 정혜란은 오십대쯤 되어 보였고, 반쯤 흰 머리를 짧게 잘랐다. 안경 너머 눈빛이 딱히 다정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았다. 그냥 늘 그런 표정인 것 같았다. 바카라상 위에는 내 이름이 적힌 파일이 놓여 있었는데, 두께가 생각보다 두꺼웠다. 저게 다 내 얘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른쪽 귀는 좀 어때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내가 언제 이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몸이 먼저 대답했다.

"똑같아요.“

"눈은."

"똑같고요.“

정혜란은 파일을 몇 장 넘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확인한다기보다, 뭔가를 그냥 예상대로 받아들이는 표정이었다.

"그 패턴, 계속 반복되네요."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았다. 물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그 말이 진료실 공기 속에 잠깐 떠 있다가, 다른 말들 사이로 흩어지는 걸 지켜봤다.

간호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다음 환자 차트를 놓고 나갔다. 정혜란은 그쪽을 잠깐 보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면은요."

"잘 못 자요. 요즘.“

"기억은."

이 질문에서 나는 조금 멈칫했다. 정혜란은 내가 멈칫하는 걸 놓치지 않았을 텐데도, 딱히 다그치지 않았다. 그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손가락은 아직 재활 안 받으시고요?"

"네.“

"받아보세요. 남은 부분이라도.“

그게 다였다. 십 분 남짓 되는 진료였다. 밖으로 나오는데, 복도 끝 창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였다. 정혜란이 무슨 말을 더 했던 것 같은데,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미 반쯤 잊어버렸다. 창밖 풍경과 버스 엔진 소리와 옆자리 사람의 기침 소리 사이로,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이 조금씩 흐려졌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카페 앞을 지나쳤다. 아주머니가 칠판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고, 나도 흔들어줬다. 그 짧은 순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또렷하게 남았다.

집에 도착해서 코트를 벗다가, 나는 문득 정혜란이 나에게 몇 번째로 그 말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 패턴, 계속 반복되네요."

처음 듣는 말 같았는데, 어쩐지 몸 어딘가에는 익숙한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민철은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병원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냉동창고에서 있었던 시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는 반쯤 듣고 반쯤 흘려들으며 창밖 바람 소리에 더 집중했다. 그 바람 소리 사이로, 자꾸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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