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제 시인

by로벤

뜨겁기만 한 공기가 콧구멍을 지나 몸으로 들어오는 때에는

다른 감각들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저 시원한 곳을 찾는 감각만이 예민해질 뿐


스-읍하기도 한 공기가 콧구멍을 지나 몸으로 들어오는 때에는

스-을슬 몸 한구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인데

뽀-오송한 곳을 찾는 감각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겠지


해가 모습을 숨기고 난 후가 되면 팔뚝의 털들이 조금씩 몸을 세우는 때에는

항온동물인 나의 피가 함께 식어가거나, 또는 오히려 뎁혀지는 것도 아닐 터인데

길가에 팔 벌리고 서서 자신의 흔적을 땅으로 기꺼이 내려보내는

성자와도 같은 한 그루 나무의 그림자에 코끝이 시큰하다


뻑뻑하게 굳어있던 마음의 볼펜촉에 기름칠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눌린 자욱만 남던 종이에 잉크가 묻어나고,

처음 들리던 찌그덕 소리는 더 이상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한 글자, 또 한 줄

이렇게

나의 계절을 만들어가는 것인데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손이, 가슴이, 머리가 풀어지기 시작하는 것인데


아, 네계절이 두계절로 바뀌어가며 흘러가는 광음(光陰)이

오직 내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학기를 앗아가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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