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는 중세국어 단원이 포함되어 있다. 대체로는 훈민정음의 서문에 해당하는 '세종어제훈민정음'을 싣어둔 상황. 아이들에게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오랜 세월을 여러 번 가르친 내용이긴 하지만 다시 수업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 다시 생각하는 것들이 생기는 일은 꽤 흥미롭다.
우선 훈민정음은 정말 세종대왕이 혼자 만든 것일까, 아니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든' 것일까. 나는 예전부터 전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편이었다. 물론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훈민정음이 하나의 완성된 문자 체계로 정리되고 해설되는 과정에 누가 참여했는가’라는 질문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세종실록』을 보면 1443년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친히'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꽤 강하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세종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모든 연구를 진행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시 조선에는 중국의 운서나 음운학에 상당한 지식을 가진 학자들이 있었고 세종 역시 당대의 학문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실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고 세종은 마지막에 승인만 했다'고 말하려면 그에 맞는 사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기록만 놓고 보면 그런 설명 역시 상당히 무리다. 오히려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뒤 그 원리를 연구하고 설명하고 바카라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초성·중성·종성의 원리와 자음의 발음기관, 기본자에서 획을 더해 다른 글자를 만드는 원리 등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작업에 정인지나 신숙주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니까 '세종 혼자 만들었다'와 '집현전이 만들었다' 중 하나를 억지로 선택하기보다는, 창제의 주체는 세종에게 두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이 컸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세종이라는 사람이 다시금 더 대단해 보인다.(사실 나는 세종이 외계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훈민정음은 단순히 글자 28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소리를 분석하고, 각각의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일정한 원리에 따라 문자로 표현해야 했다.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바탕으로 기본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하면서 음운상의 관계를 표현했고, 모음 역시 천·지·인의 원리를 이용해 기본자를 만들고 그것을 조합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우리말을 적기 위한 새로운 문자 체계’라는 하나의 설계 속에 넣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세종의 천재성을 평가할 때 한글을 만들었다는 결과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분석하고 그것을 문자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능력이었다.
게다가 당시 조선에서 한자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한문을 알아야 경전을 읽을 수 있었고,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국가의 공식적인 문서도 작성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문자와 지식과 권력이 거의 하나로 묶여 있던 슬롯였다. 그런 상황에서 세종은 백성들이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그냥 개인의 무지로 보지 않고, 아예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방향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게 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한글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발상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잘 느끼지 못하는데, 기존의 문자 체계가 이미 수백 년 동안 슬롯를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왕이 '우리말에 맞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자'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의 사고방식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종을 너무 쉽게 '성군'이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세종이 뛰어난 왕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성군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성군'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이미지와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성군의 기준은 조금 달랐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조선에서 좋은 왕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백성을 먹여 살리고 국가를 안정시키며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세금을 적절하게 거두고, 인재를 등용하고,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왕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의 민주주의 슬롯에서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과 조선의 왕을 평가하는 기준을 똑같이 적용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은 정말 잘한 일이 많다. 그런데 세종에게도 분명히 불편한 부분이 있다. 내가 특히 신경 쓰이는 것은 북방 사민정바카라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4군 6진을 배울 때 지도에 표시된 영토만 본다.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새로운 지역을 개척했고 국경을 안정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도에는 그 땅에서 실제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성을 쌓고 군대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국경을 지킬 수 없었으니 조선 정부는 남쪽 지역의 백성들을 북방으로 옮겼다. 그런데 누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추운 북방으로 가고 싶었을까. 당시 북방은 기후도 좋지 않았고 여진족과의 충돌 가능성도 있었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이주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 실록 기록을 보면 이주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세종의 북방정바카라을 나쁜 정바카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당시 조선 입장에서 북방은 실제적인 안보 문제였고, 국경을 안정시키는 것은 왕에게 중요한 바카라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국경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지금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국가 전체의 필요와 그 정바카라을 실제로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 성공적인 정바카라이었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면 세종을 단순히 '백성을 사랑한 완벽한 성군'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사실 영조와 정조 시기를 우리가 흔히 '태평성대'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영조 시대라고 해서 아무런 정치적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정조 시대라고 해서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것도 아니다. 영조는 즉위 초부터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이인좌의 난도 있었다. 정조 역시 당쟁에서 자유로운 왕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영조와 정조를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명군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정치적 갈등 속에서 탕평바카라과 개혁을 추진했고, 규장각과 같은 제도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키웠으며, 국가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태평성대'라는 말 역시 당시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그 시대를 바라보며 붙인 역사적 평가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성군'이라는 표현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세종이 성군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선이라는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세종은 정말 성군에 가까운 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성군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한 모든 일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백성을 위한 정바카라을 펼치면서도 국가의 필요에 따라 백성을 강제로 이주시킬 수 있었고,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키면서도 군사력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혔다. 이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근대 국가의 왕이라면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모두 지워버리고 세종을 완벽한 성군으로 만들어버리면 역사 속 세종이라는 사람은 너무 평면적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래서 세종을 '완벽한 성군'이라기보다 자신이 가진 엄청난 지적 능력을 국가 운영에 거의 집요할 정도로 쏟아부었던 비범한 군주라고 보는 쪽이 더 마음에 든다. 훈민정음을 만들고, 천문과 역법을 연구하고, 음악을 정비하고, 농업과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군사와 국방을 챙기고, 신하들과 끊임없이 토론했다. 그 많은 분야를 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파고들 수 있었을까 싶다. 나는 세종의 가장 큰 장점이 단순히 머리가 좋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필요한 사람들을 곁에 두었으며, 궁금한 것이 생기면 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끝까지 파고들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역사적 인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행동까지 좋아할 필요는 없다. 세종의 업적을 인정하면서 북방 사민정바카라의 강제성을 비판할 수도 있고, 훈민정음 창제에서 세종의 역할을 높게 평가하면서 집현전 학자들의 공헌도 인정할 수 있다. 영조와 정조를 명군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시대의 정치적 갈등과 한계를 함께 볼 수 있다. 오히려 나는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역사를 제대로 보는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누가 성군이고 누가 폭군인가’를 외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충분히 알고 나서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면서도 싫어할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
세종이 위대한 왕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이제는 ‘성군이니까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이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하고, 그 위대한 사람에게도 분명히 존재했던 한계와 그늘은 그대로 남겨두는 것.
나는 그게 역사를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세종이 작성한 훈민정음 서문은 한자로 기록되었는데 이걸 지금 우리가 아는 한글로 번역한 것이 17년 뒤 세조(구.수양대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은 입체적이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여기까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