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틀 뒤, 마르틴은 다시 서점을 찾았다. 이번엔 낮이 아니라 저녁, 문 닫을 시간에 맞춰서였다.
에바는 카운터 안쪽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가 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니면 이제는 무엇에도 놀라지 않기로 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야.” 그녀가 말했다.
“오래 안 걸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대답, 준비됐어?”
마르틴은 그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준비된 답은 있었다. 어젯밤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그 답. 가족, 두려움, 그리고 그 이후의 삶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 하지만 그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니.” 그가 말했다.
“없어.”
에바는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그 살아있는 눈 속에 아주 잠깐, 뭔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실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확인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마치 ‘역시’라고 말하는 눈빛.
“그럼 뭐 하러 왔어.”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라우터한테 뭐라고 보고할지, 그건 아직 내가 정할 수 있어.” 마르틴이 말했다.
“당신이 어디까지 원하는지 알고 싶어서 왔어.”
에바는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낮게 웃었다. 어딘가 비어있는 웃음.
“내가 원하는 걸 물어보는 거야, 지금?” 그녀가 장부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20년 전엔 내 의견 같은 거 안 물어봤잖아. 그때 나한테 필요했던 건 딱 한마디였어. ‘제가 아니라 저 사람입니다’가 아니라, ‘제가 그렇습니다.’ 그거였어. 근데 지금은 나한테 뭘 원하는지 물어본다고?”
마르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됐어.” 그녀가 손을 저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좀 더 차분한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당신이 뭘 보고하고 뭘 빼든,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야. 그건 당신 문제야.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해.”
“그게 무슨 뜻이야.”
“내 이름을 넣든 빼든, 나는 계속 이 일을 할 거라는 뜻이야.”
그녀가 상자 안의 명단을 흘끗 봤다.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잡히든 안 잡히든 계속 생겨나. 내가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이 일을 이어받겠지.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지킨다고 해서,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어.”
그 말이 마르틴의 가슴 어딘가를 정확히 찔렀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
에바는 오랫동안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라는 거 없어. 20년 전에 이미 배웠어. 당신한테 뭘 바라는 건 소용없다는 거.”
그 말은 원망보다 더 깊은 어딘가에서 나온 것 같았다. 체념도 아니었다. 그저, 오래전에 이미 끝나버린 계산.
마르틴은 문 쪽으로 돌아서다가, 다시 그녀를 돌아봤다.
“만약에, 내가 당신 이름을 빼고 보고한다면...”
“그럼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에바가 그의 말을 잘랐다.
“당신 자신을 위한 거겠지.”
그녀의 그 말이, 정확히 마르틴이 스스로도 두려워하던 진실을 건드렸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20년 전의 침묵과 같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거의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할 것이었다. 인쇄 경로도, 인쇄소 이름도, 배포 방식도. 다만 마지막 한 조각, 그녀의 이름만을 빼는 것.
그건 침묵이 아니라, 침묵보다 훨씬 정교하게 다듬어진 어떤 것이었다. 진실을 대부분 내어주고, 딱 하나만 감추는 방식. 그 편이 발각될 위험도 적었고, 스스로에게 ‘나는 그때와 다르다’고 말할 여지도 남겨주었다.
그는 그 편리함이, 20년 전의 침묵보다 더 나은 무언가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남는 결과는 똑같았다. 그녀가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그 사실을 조금 더 세련되게 감출 수 있을 뿐이었다.
“알겠어.” 그가 겨우 말했다.
에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카운터의 램프를 끄며, 문 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마르틴은 골목을 걸어 나오며, 자신이 방금 받은 것이 용서도 원망도 아닌, 훨씬 더 무거운 무언가라는 걸 깨달았다. 무관심에 가까운 체념.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이미 오래전에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어떤 분노보다도 그를 더 참담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눈깨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르틴은 코트 깃을 세우며 생각했다. 내일, 그는 보고서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는, 이제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이었다. 에바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과의 문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