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회상 3), 늦봄. 상담실
방과후 상담실에는 하나 밖에 달려있지 않은 창문을 통해 늦은 봄볕이 비스듬히 든다. 화단에서 라일락 냄새가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고. 바카라상 위에는 걷어놓은 수행평가지 뭉치와 색 바랜 상담 기록 카드가 조금은 무질서하게 놓여있다. 민재 때와 같은 모양으로 생긴 상담카드이지만 다른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복도 저편에서 아이들이 청소 도구를 끄는 소리,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멀어졌다가 조용해진다. 상담실 문은 그가 늘 그렇듯 반쯤 열어둔 채다. 이건 규정이라서라기보다, 그게 그의 습관이기도 했다. 열린 것도 안 열린 것도 아닌 그 어떤 지점.
박선생은 며칠 전 가정방문에서 본 것들인 정렬된 신발과 손글씨 현수막과 어머니의 끊긴 문장을 아직 지수에게 직접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그는 에둘러 묻는다.
"지수야, 요즘은 좀 어때. 집에서."
"그냥... 똑같아요."
그는 화제를 조금 돌려, 지난주 수업 시간에 다뤘던 시 한 편 이야기를 꺼낸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것들에 관한 시였다. 지수는 그 시의 화자가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건지, 아니면 뿌리 없이도 괜찮다고 우기는 건지" 헷갈렸다고 말한다. 박선생은 그 말에 조금 놀란다. 그가 수업 시간에 미처 짚어주지 못했던 지점을, 지수는 혼자서 이미 읽어낸 것이다. 그 시를 가지고 수업했을 때 지수는 반쯤 엎드린 자세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너는 어느 쪽인 것 같아, 그 화자가."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뿌리 없이 괜찮다고 우기는 쪽 같아요, 요즘. 선생님은요? 선생님도 그런 적 있어요?"
박선생은 잠시 대답을 고른다. 학생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해도 되는 것인지, 그 경계를 그는 매번 다시 가늠해야 한다. 학생과의 대화에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때로는 득이 되지만 때로는 한 끗 차로 독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결국 그는 짧게, 자신이 왜 교사가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꺼낸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 그에게 해준 말 한마디가 그의 진로를 바꿔놓았다는 것.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스스로도 잊고 있던 어떤 확신을 다시 만져본다. 나는 그런 말 한마디를 다시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확신. 그리고 나는 학생들이 지금까지 만나왔었던 교사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학생들의 마음은 진정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은… 답답해요."
그 말을 하며 지수는 또래보다 정갈하지만 건조한 어휘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린다. 흐느낌도 없이, 그냥 눈물만 조용히.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라, 박선생은 처음엔 그게 눈물인지 아닌지 잠깐 헷갈릴 뻔한다.
그는 바카라상 위 티슈 상자를 지수 쪽으로 밀어준다. 손이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상자만 건너간다. 이 사소한 동작을, 그는 나중에도 여러 번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그때 무의식중에 지키고 있던 어떤 선의 형태로.
"그러니까 이번 여름방학에, 이모님 댁에라도 가 있어보는 게 어때. 잠깐이라도 거리를 두고."
"(눈물을 닦고, 작게 웃으며)네. 그래볼게요."
지수가 웃는 그 짧은 순간, 박선생은 어떤 안도감과 함께 설명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낀다. 그건 단순히 학생 하나를 상담했다는 데서 오는 감정이라기엔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사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는 그 감정의 정체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기로 한다. 이건 순수한 걱정이다, 라고 그는 속으로 한 번 더 분명하게 되뇐다. 그러나 그렇게 되뇐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훼손하는 것만 같아 조금은 찝찝한 마음이 든다.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온전하게 공적이기만 할 수 있는지, 그랬을 때의 그 관계를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상담실을 나서는 지수의 뒷모습을 그는 필요 이상으로 오래 지켜본다. 복도 끝, 지수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러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마침 그 복도를 지나가던 이선생이 반쯤 열린 문틈으로 그를 보고 한마디 던진다.
"어라? 또 상담이에요? 어지간하시네. 선생님 반 애들 진짜 열심히 챙기시네."
가벼운 말이지만, 이선생의 시선은 문 너머 사라지는 지수의 뒷모습과 박선생을 한 번씩 번갈아 보고 지나간다. 박선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서류를 정리한다.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이 순간 스스로에게조차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과 사명감이라는 이름의 확신, 이 둘 사이의 경계가 그날따라 유독 흐릿하게 느껴진다는 걸, 애써 모른 척한다.
박선생은 이 순간 확신한다. 내가 저 아이를 구했다고.
그 확신은, 교회 마당 앞에서 품었던 사명감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는 자기증명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렇게 울던 아이들이, 그것도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아이들이,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돌아와 앉아 있게 된다는 것을. 눈을 피하고, 말수가 줄고, 어떤 아이는 아예 자퇴서를 들고 오기도 했다. 분명 상담실에서는 모두가 울었다.
그런데 방학이 지나면, 아무도 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