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과 잔돌 - 문태준

by로벤

"사람답게 살아라."라는 말은 소설가 김정한이 평생을 두고 자주 한 말이다. 나는 그의 문장 가운데 다음의 구절을 좋아한다. "어딜 가도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그리고 인간이 살았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으레 나뭇가리가 있고 그 곁에는 코흘리개들이 놀곤 하였다. 조국이란 것이 점점 가슴에 느껴졌다." 이 명료한 문장을 읽고 있으면 사람이 떼를 이루어 사는 세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만 같다. 그것도 느리고 큰 자연과 더불어.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다.

이래저래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사연으로 이별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눈물과 사랑을 하고 있는 저 뜨거운 가슴도 짐작을 하게 된다. 조각돌처럼 까다롭고 별난 사람도 있고, 몽돌처럼 둥글둥글한 사람도 있고, 조각을 한 듯 잘생긴 사람도 있고, 마음에 태풍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마음에 4월의 봄볕이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 하나의 무리를 이루고 사는 것이 이 세상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략)

나는 가끔 생각하기를 마당이 있는 집이 내게 있다면 주변의 돌들을 모아서 돌탑을 쌓고 싶다고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도 돌탑을 하나씩 쌓을 것을 부탁하고 싶다. 산사에 올라가다 보면 길가나 바위 위에 누군가 쌓아 올린 돌탑들처럼 나의 작은 마당 한쪽 한쪽에 돌탑을 쌓아 놓고 싶은 것이다. 아래에는 큰 돌이 필요하고 위를 향해 쌓아 갈수록 보다 작은 돌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구해 온 돌들은 각각의 크기와 모양과 빛깔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반듯한 것도 있고 움푹 팬 것도 있을 것이다. 마치 여러 종류의 꽃과 풀들이 자라나서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그 돌들은 서로 업고 업혀서 하나의 탑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돌탑을 쌓아 본 사람은 돌탑을 쌓는 데에는 잔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불안하게 기우뚱하는 돌탑의 층을 바로잡아 주려면 이 잔돌을 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잔돌을 굄으로써 탑은 한 층 한 층 수평을 이루게 된다. 못생긴 나무도 숲을 이루는 한 나무요,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보잘것없고 작은 잔돌이라도 탑을 올리는 데에는 꼭 필요하다. 돌탑을 쌓아 올리면서 배우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잔돌의 소중함을 아는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다를 바 없다. 잔돌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툴 때 그 대화의 매정한 분위기를 무너뜨려 주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더러 있다. 잔돌처럼 작용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의견의 대립을 풀어 주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부드러운 개입의 고마움을 우리는 간혹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봄 산이 봄 산인 이유는 새잎이 돋고 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꽃은 자기의 존재감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냥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피어나 봄 산의 아름다움을 이룬다. 이 세세하고 능동적인 존재의 움직임을 보살폈으면 한다. 돌탑에 다시 비유하자면 잔돌과 같은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 문태준, 「돌탑과 잔돌」 -


이런 내용의 글을 한두 번 접한 것도 아닌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울컥한다. 세상의 굴곡을 조금 더 겪어낸 탓인지, 아니면 효율과 속도만 따지는 세상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삶의 본질이 생각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6년째 이어오고 있는 커피 친구와의 다양한 대화들의 핵심도 결국은 단순하다.

"인생은 별거 없다. 그저 나답게 살자."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김정한 선생이 말한 '사람답게 사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는 또 나름 교양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라, 카페에서 대화할 때도 남들 방해 안 되게 조용조용 소곤거리며 말한다구.. ㅋㅋ 이런 사소한 배려와 유난스러움이 모여 사람 사는 냄새를 만드는 거겠지.


사람이 떼를 이루어 사는 세상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내 삶만 유난히 특별할 것도 없고, 타인의 삶이 남루하거나 부족한 것도 아니다. 조각돌처럼 까다롭고 별난 사람, 몽돌처럼 둥글둥글한 사람, 마음에 태풍이 치는 사람이나 봄볕이 내리는 사람까지 그저 저마다의 무게를 지닌 채 각자의 몫을 살아갈 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추구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그 지루하고도 진지한 질문이 이어질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비로소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된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돌탑의 '큰 돌'이 되고 싶어 한다. 눈에 띄는 업적을 이루어야만 제대로 산 것 같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올라야 성공이라 믿으니까. 나 역시 한때는 그런 성공을 맹목적으로 동경하기도 했고, 때로는 삐딱한 오만함으로 경멸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모든 열정과 냉소를 내려놓고, 성공을 좇는 삶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며 담담히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성공하는 삶이 오직 '큰 돌이 되는 것'에만 있고, 틈새를 메우는 '작은 돌'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건 아주 위험한 착각이다.


돌탑을 직접 쌓아본 사람은 안다.

크고 멋진 돌만으로는 절대 탑을 높이 올릴 수 없다는 걸. 기우뚱거리며 불안한 탑의 무게 중심을 잡고, 무너지지 않게 틈새를 꽉 채워주는 건 다름 아닌 손톱만 한 잔돌들이다. 이 보잘것없는 잔돌들이 큰 돌 사이사이에 단단히 박힐 때 비로소 탑은 수평을 찾고 견고한 균형을 완성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전혀 다를 게 없다. 의견이 엇갈려 대화의 온도가 삐걱거리고 날이 설 때, 특유의 유연함과 부드러운 개입으로 그 뻣뻣해진 공기를 누그러뜨리는 잔돌 같은 존재들이 있다. 자기주장을 거칠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갈등의 틈새로 조용히 스며들어 대립을 풀어내는 사람들. 못생긴 나무도 숲을 이루는 한 나무이듯, 그들이야말로 세상이라는 탑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진정한 무게 중심이다.


이 투박한 돌탑의 원리를 지금 우리가 마주한 AI 시대의 흐름과 겹쳐보면 묘하게 기시감이 든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고, 오차 없는 완벽한 연산이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 알고리즘은 거대한 데이터라는 큰 돌들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며 완벽한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차갑고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로 떠오르는 건 바로 '인간다움'이다. 논리와 연산만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인간 슬롯의 미세한 틈새들, 타인의 눈물을 짐작하는 가슴, 대화의 뻣뻣한 온도를 누그러뜨리는 위트와 공감, 그리고 서로의 결핍을 기꺼이 업고 업혀주는 배려는 기계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니까.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돌탑을 이루는 각자의 돌이다.

누군가는 거대한 주춧돌이 되고, 누군가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넓적한 돌이 되겠지. 그러나 탑을 완성하는 최후의 균형은 바로 그 사이를 채우는 따뜻한 잔돌들에 있다. 기계적인 완벽함이 지배해 갈 앞으로의 세상 속에서, 묵묵히 타인의 틈새를 메우고 수평을 잡아주는 잔돌 같은 '사람의 향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것 같다. 이 혐오의 시대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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