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물 빼는 날

by로벤

저수지 물을 빼는 날이었다. 바닥이 드러나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진창으로 들어간다. 가장 중요한 장비는 바로 '가래'다. 농기구 가래와는 다른 물건으로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도구다. 원뿔형 대바구니인 가래로 물고기를 가둬서 잡는 전통어로법 '가래치기'를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TV 다큐였다. 우연히 채널 돌리다 흥미로워 멈췄는데 이런 귀한 장면을 보게 되다니... ㅋㅋ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지만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나름대로 상식과 교양과 지식이 아주 풍부하다고 자부하고 살고 있지만 늘 이렇게 새로운 것들은 많다.

적도를 지나는 배는 의식을 한다더라. 적도식이라고. (배로 적도를 넘어본 적이 없으니 평생 몰랐을 뻔했는데 이것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얼마전 아르헨티나와 명경기를 펼친 카보베르데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얼마 전에 처음 알았다. 아프리카 서쪽 섬 나라. 이름조차 올려본 적 없는 그 나라가, 누군가한텐 조국이고 평생일텐데 말이다.

근데 이런 건 그냥 몰랐던 사실이다. 알고 나면 아 그렇구나, 하고 끝난다.

그런데 저수지에서 사람들이 바닥을 향해 대바구니를 푹푹 꽂아대는 이 가래치기 이야기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아! 일 년에 한 번이라는 이 저수지 물 빠진 날 진창에 모인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보였다. 누군가는 가래를 꽂는 자리마다 큰 가물치 같은 걸 들어올리고, 누군가는 번번히 허탕을 치곤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허허. 사람들마다 달리 잡은 그 물고기들을 가지고 그날 저녁 먹을 거리를 요리하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마을에서는 크고 작은 잔치가 열렸다.

어쩌면 나는 가래치기와 저 크고 작은 잔치를 몰랐던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저런 게 잔치가 될 수 있다는 걸 상상도 안 해봤다. 물 빼는 날. 진창에 다 같이 들어가는 날. 그게 일 년 중 제일 신나는 날일 수도 있다는 걸.

다 행복하다는 게 이상했다. 많이 잡는 사람도, 하나도 못 잡는 사람도. 어떤 아저씨는 물 빠지는 길목을 미리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 서 있으면 고기가 알아서 몰려오니까.

그 아저씨가 이긴 걸까. 아닌 것 같다. 그냥 좀 더 신나게 논 거지. 여기엔 등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잡는 물고기는 그저 핑계였으며 다 같이 흙탕에 들어가는 날이 일 년에 하루 필요했고, 물 빼는 날이 마침 좋은 구실이었을 뿐은 아닐까.

범위와 종류를 많이 넓히느라 나름 애를 써왔지만 나에게 행복은 어쩌면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진 것 같다. 뭘 이루거나 어디를 가거나. 근데 저 사람들의 하루는 그중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 같이 진창에 들어간 하루. 그걸 일 년을 기다린다. 다시 깨닫지만 행복 참 별거 없다. 행복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그저 그 기준을 낮추고 빈도를 높이면 세상살이하며 어쩔 수 없이 쌓이는 노폐물들도 잘 녹일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공중파 TV에서 너무도 안 어울리는 각종 건강식품, 보험 광고 등을 해대는 걸 종종 보면서 아내와 나는 매번 'TV방송국이 정말 힘들기는 한 모양이네'라고 말한다. TV는 곧 사라지게 될까, 아니 사라져야 하는 건가?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애용한다. 유튜브는 사용자의 취향을 잘 분석하고 그 '알고리즘'에 따라 비스무리한 내용들을 끝도 없이 추천한다. 그런데 TV는 다른다. 보려던 게 아니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신선한 자극이었다. 잘 보지도 않지만 내가 유튜브에서 '가래치기'나 '저수지 물 빼는 날'을 검색할 일이 뭐가 있을까? ㅋㅋㅋ

그러니 가끔은 TV 채널을 돌리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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