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간 속에서 만난 오늘

by푸른 꽃

벤자민과 데이지는 나란히 자전거를 탄다. 같은 나이의 얼굴로, 같은 속도로 달리며 웃는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흐르던 두 사람의 시간이 잠시 겹쳐지는 순간이다. 이내 두 사람의 시간은 다시 멀어진다.

가끔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선명하게 펼쳐지는 페이지는 없다. 삶의 어느 순간도 수월한 적이 없어서일까.


그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삶의 장면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태어나자마자 80세의 몸을 가진 벤자민은 점점 젊어지고, 연인 데이지는 세월을 따라 나이 들어간다. 두 사람의 시간은 어긋남의 연속이다. 서로의 나이가 교차하던 짧은 한때를 제외하고서.


젊음의 오류는 그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데 있다. 벤자민과 데이지가 같은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웃고 사랑하던 시간은 잠시였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찰나의 온기뿐. 내가 살아가는 나날도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흘러간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삶은 언제나 도면 밖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영화 속 데이지의 사고는 우연의 연속이 가져온 결과였다. 누군가 늦잠을 자고, 택시가 잠시 멈추고, 한 여성이 물건을 떨어뜨리는 사소한 사건들. 그렇게 작은 선택 하나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 속 엇갈리는 시간을 보며 문득 나의 지나간 계절들을 떠올렸다. 오래전 잔디밭 운동장에 누워 별을 봤던 밤과 무작정 걷던 저녁들, 그때의 공기까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 희미한 공기 속에는 서툴던 유년기와 푸르던 청년기,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선택들이 정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길 위에는 햇살과 바람,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시간들이 함께했을 뿐이다.


상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두가 같은 모습은 아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머물고, 어떤 이는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벤자민은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잃어간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벤자민이 말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이 내 안에도 있을까.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는 물음표만 맴돈다.


벤자민은 바다를 항해하고, 전쟁을 겪고, 사랑을 만나고, 다시 떠난다. 계획한 삶보다 떠밀리듯 흘러간 삶에 가깝다. 영화는 인생이 결코 도면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어릴 적에는 간절하기만 하면 근사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치열한 실천이 빠져 있던 막연한 바람이었음을 깨닫는다. 미숙했던 간절함조차 삶의 모퉁이에서 밀어주는 힘이었을까. 글을 꿈꾸던 내가 글을 쓰고 있으니.


무용수였던 데이지는 사고 이후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된다. 세상의 전부였던 꿈을 내려놓아야 했던 그녀처럼, 나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왔다. 지금에 머무는 법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흘려버린 숱한 오늘이 얼마나 눈부신 보석이었는지 알게 된다.


이제는 조금 더 느긋한 시선으로 살고 싶다. 밤공기에 스미는 꽃향기와 계절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를,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느끼면서.


누군가는 강가에 앉기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을 잘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어머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 영화 중에서


이제 주어진 것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지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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