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그곳에 있어줘
우주선에 탄 후 정거장은 점점 작아졌다.
처음에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탐사선의 창을 가득 채우던 금속 골격과 태양광 패널, 회전하고 있는 원형 거주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그것들은 하나의 형체로 뭉쳐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빛나는 점이 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한이준은 모니터상 깜박거리는 한 점을 한참 바라봤다.
지구.
태어난 곳.
공부한 곳.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완전히 떠나본 적 없었던 곳.
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건드렸다.
작은 점이 확대됐다.
푸른색이었다.
한이준은 손을 내렸다.
"멀어졌네."
맞은편에서 서지우가 대답했다.
"응."
"생각보다 빨리."
"우리가 빨라진 거겠지."
한이준이 웃었다.
"그런가."
서지우는 창밖을 바라봤다.
"돌아갈 때는 더 빨리 느껴질 거야."
"왜?"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한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
선내에서 시간은 막힘없이 흘러갔다.
우주선 안쪽에서는 낮은 진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인공중력은 이미 다시 작동하고 있었다.
좌석에서 풀려난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민수는 장비 패널 앞에 앉아 있었다.
강도윤은 화면에 떠 있는 지질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강준호는 조종석에서 항법 데이터를 확인했다.
좁은 우주선 안에는 한달 남짓 보낸 평범한 생활의 흔적이 있었다.
개인 물품.
접어둔 옷.
사용한 컵.
단백질바 포장지.
작은 수납함.
그리고 벽면에 붙은 일정표.
이제 화성까지 남은 시간.
41시간 17분.
오민수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이제 이틀도 안 남았네요."
강도윤이 대답했다.
"정확히는 이틀에서 일곱 시간 정도."
"그게 그거죠."
"과학자한테는 다르다."
오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질학자는 재미없어."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단백질바를 하나 꺼냈다.
오민수가 그것을 보았다.
"또 먹어요?"
"응."
"그거 맛있어요?"
강도윤이 포장을 뜯었다.
잠시 생각했다.
"효율적이야."
오민수가 피식 웃었다.
"그 말은 맛없다는 거잖아요."
강도윤은 피식 웃었다.
화성 접근이 시작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조종석의 조명이 바뀌었다.
강준호가 말했다.
"화성권 진입 준비."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창밖은 여전히 검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붉은 점 하나가 보였다.
처음에는 별과 다르지 않았다.
작았다.
희미했다.
한이준은 창 가까이 다가갔다.
점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붉은색이었다.
지도 위의 화성.
데이터 속의 화성.
하지만 지금 창밖에 있는 것은 달랐다.
저곳에는 실제 대지가 있었다.
바위가 있었고.
계곡이 있었고.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그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화성이 커졌다.
표면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대지 사이로 길게 이어진 검은 선들이 보였다.
테라포밍 시설이었다.
대형 대기 처리 시설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거대한 탑에서 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공 대기 생성기.
산소와 질소를 분리하고 저장하는 시설.
대기의 온도와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
화성 전체를 바꾸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오민수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게 다 사람이 만든 거예요?"
강도윤이 대답했다.
"대부분."
"대부분?"
"자연적으로 생긴 것도 섞여 있으니까."
오민수가 한이준을 바라봤다.
"저 정도면 사람 살 만하네요."
서지우가 말했다.
"밖에서 숨 쉬면 죽어."
"아."
"아직은."
오민수가 다시 창밖을 봤다.
"그럼 사람 살 만한 건 아니네요."
서지우가 웃었다.
"조금 더 기다려."
화성의 밤 쪽으로 들어서자 거주구역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작은 빛들이 떠 있었다.
돔이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더 멀리.
수십 개의 빛이 이어졌다.
사람이 만든 작은 도시였다.
한이준은 숨을 멈췄다.
돔 외부에는 방사선 차폐층이 두껍게 덮여 있었고, 각 돔 사이에는 연결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대형 농업 시설의 내부에는 식물 재배용 조명이 켜져 있었다.
붉은 행성 위에 푸른빛과 흰빛이 번지고 있었다.
한이준은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2년 전.
화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인간이 만든 것은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있었다.
화성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서지우가 조용히 말했다.
"저기 보여?"
"응."
"아르테미스 기지."
한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작네."
"처음엔 더 작았어."
한이준이 그녀를 바라봤다.
서지우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저 돔 하나뿐이었어."
한이준은 다시 화성을 바라봤다.
"많이 변했네."
서지우가 말했다.
"우리가 변하게 만든 거지."
그 말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탐사선이 기지 상공으로 진입했다.
통신이 연결됐다.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성 아르테미스 기지에서 A-17..."
강준호가 대답했다.
"들립니다."
"착륙 절차를 시작합니다."
"확인."
잠시 후 다른 목소리가 들어왔다.
여자였다.
조금 낮고 차분한 목소리.
"환영합니다."
강준호가 물었다.
"기지 운영팀입니까?"
"엘레나 마르티네즈입니다."
잠시 정적이 있었다.
"여러분이 이번 탐사팀이군요."
오민수가 작게 말했다.
"유명한가 본데요."
강도윤이 대답했다.
"아마 귀찮은 팀으로 유명할 겁니다."
엘레나가 통신 너머에서 말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오민수가 눈을 크게 떴다.
"들렸어요?"
"다 들립니다."
작게 웃음이 터졌다.
강준호가 말했다.
"착륙 준비하겠습니다."
탐사선이 기울었다.
화성이 창밖을 가득 채웠다.
붉은 대지.
깊게 패인 계곡.
거대한 테라포밍 시설.
멀리 이어진 거주 돔.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한이준은 창문에 손을 댔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이준은 생각했다.
저 붉은 대지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순간이었다.
강도윤이 말했다.
"잠깐."
한이준이 돌아봤다.
"왜?"
강도윤은 지질 스캐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저쪽."
"뭔데?"
강도윤이 창밖을 가리켰다.
화성의 붉은 대지 위.
아르테미스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스캐너 화면에는 이상한 선이 하나 잡혀 있었다.
너무 곧았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형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일정했다.
강도윤이 화면을 확대했다.
선은 지표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이준이 물었다.
"얼마나 깊어?"
강도윤이 잠시 침묵했다.
"아직 모르겠어."
"그럼 뭐가 이상한데?"
강도윤이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이게 처음 발견된 게 아닌데..."
한이준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뜻이야?"
강도윤이 대답하려는 순간,
탐사선이 크게 흔들렸다.
통신이 끊겼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다시 켜진 지질 스캐너 위에,
조금 전까지 없었던 두 번째 선이 나타났다.
한이준은 그것을 바라봤다.
두 개의 선은 서로 평행했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아래에서 길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 1부 붉은 행성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