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어느 날
커피가 먼저 도착했다.
한이준은 눈을 뜨기도 전에 그 냄새를 맡았다.
우주정거장의 좁은 휴게실.
한이준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측창 너머로 지구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푸른 바다와 흰 구름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시야를 지나갔다.
휴게실 천장에서는 환풍기가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웅.
10여년 동안 쉬지 않고 돌아온 장치였다.
한쪽 환풍구 주변의 패널은 다른 곳보다 색이 조금 바랬다.
몇 년 전 교체한 패널과 원래부터 붙어 있던 패널의 색깔도 미묘하게 달랐다.
벽면에는 작은 수리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볼트 몇 개는 새것이었고, 그 주변의 금속에는 오래된 긁힌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그 위에 작은 스티커 하나를 붙여 놓았다.
2039. "다시는 이 부분 건드리지 마시오.“
한이준은 그 문구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 옆에 새 스티커가 하나 더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48. "이미 건드렸음.“
“잠은 잤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박태성이었다.
태성은 이준보다 키가 조금 컸고, 어깨가 넓었다.
지구에서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탓에 우주 생활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체격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얼굴은 예전보다 조금 길어졌고, 눈가에는 지구에서는 없었던 잔주름이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구레나룻이 눈에 띄었다.
정리안 된 검은 구레나룻이 귀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한이준은 커피를 호록 거리며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세 시간.”
“그걸 잤다고 해?”
“우주에서는 세 시간도 많이 자는 거야.”
“화성 커피는?”
“아직도 없어.”
“테라포밍 12년 차인데?”
“물이 부족해서?”
“아니. 사람들이 커피부터 다 마셔버렸거든.”
"그나저나 너 그 수염은 언제 깎을거냐?”
한이준이 그것을 힐끗 바라봤다.
태성이 자신의 구레나룻을 자랑스러운 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멋있잖아.”
“지구에서는 촌스럽다고 욕먹었잖아.”
“누가?”
“나.”
“그때 네가 머리 밀라고 했지.”
“응.”
“그래서 밀었더니 네가 웃었잖아.”
한이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건 네가 너무 안 어울려서.”
“그래서 다시 길렀지.”
“10년 동안?”
“중간에 한 번 잘랐어.”
“언제?”
"기억 안 나.”
한이준이 피식 웃었다.
박태성은 맞은편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우주정거장의 생활구역은 인공중력으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지구보다 약한 중력 탓에 그의 큰 몸은 앉을 때마다 아주 조금씩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남겼다. 태성은 그런 움직임에 익숙한 듯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다리를 뻗었다.
“세 시간이라.”
그가 다시 말했다.
“화성 가서도 그럴 거냐?”
“아마.”
“그러다 죽는다.”
“죽기 전에 유적 하나는 찾겠지.”
“미친놈.”
“고마워.”
태성이 웃었다.
두 사람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지구가 천천히 시야를 가로질렀다.
태성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는 우리가 우주에 올라올 줄 알았냐?”
“아니.”
“나도.”
태성의 시선이 지구에서 멀어졌다.
정거장 내부의 온도는 23.5도.
습도는 40퍼센트.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쾌적했지만, 지구의 아침과는 어딘가 달랐다.
공기는 조금 건조했고, 환기 장치가 내는 낮은 진동이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곳에서는 창문을 열 수 없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비도 내리지 않았다.
냄새조차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마시는 공기는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정거장 안을 몇 번이고 순환했다.
누군가 내쉰 숨에서 이산화탄소를 걸러내고, 물을 회수하고, 산소를 다시 만들어냈다.
관측창 너머 아주 먼 곳에 붉은 점 하나가 보였다.
화성. 태성이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복 60일이라며?”
“응.”
“이번엔 좀 짧네.”
“궤도 창이 좋아.”
“좋긴 뭐가 좋아.”
태성이 이준을 바라봤다.
“계속 네 놈 얼굴을 봐야 하는데.”
한이준이 웃었다.
태성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네가 사고 치는 걸 12년째 보고 있거든.”
한이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는 유적만 찾고 올게.”
“그 말을 믿으라고?”
“응.”
“안 믿어.”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
벽면의 시간 표시가 조용히 바뀌었다.
T-00:56:18
출격까지 오십육 분이 남았다는 표시였다.
박태성이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도망갈 시간은 있네.”
한이준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너는 안 가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태성이 웃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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