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다는 수평선 너머까지 푸르렀고,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다.
낮게 깔린 구름 아래서 빗방울이 커다란 나뭇잎을 두드릴 때마다
숲 전체에서 젖은 초록 냄새가 피어올랐다.
시골의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강가의 물가를 뛰어다녔다.
누군가는 얕은 물에 발을 담갔고, 누군가는 굵은 바위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벌린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건너편,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숲속 나뭇가지 사이로 수백 마리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세상은 평온했고, 아침은 늘 그러하듯 무해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는 그랬다.
하늘의 끝, 구름이 찢어진 틈새로 두 개의 위성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희고 컸다. 다른 하나는 작고 붉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두 개의 달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하늘의 일부였고, 그것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저녁이 되면 푸른 빛을 머금고 떠오르는 달과, 언제나 붉은 자국처럼 남아 있는 작은 달. 그 조화가 특별할 이유는 없었다.
수만 개의 창문이 박힌 거대한 유리 빌딩 숲 속 도시의 중심부에서 경보음이 울린 것은 오전 10시 13분이었다.
짧은 세 번의 신호.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들이 강물에서 나왔다.
도심 거리의 상점들이 하나둘 열려있던 출입구를 닫았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잇는 거대한 가상 스크린과 거리의 벽면마다 일제히 푸른색 문자가 떠올랐다.
[대기 안정성 경보]
잠시 후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평균 표면 온도 상승률이 예상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대수롭지 않은 오류이거나,
혹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기상 이변 중 하나쯤으로 여기는 눈빛들이었다.
누군가는 아무 표정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누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여자가 손바닥을 펼쳐 빗물을 받아보았다.
빗방울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
뜨거웠다.
차갑게 느껴져야 할 비가 체온보다 뜨거웠다.
그녀는 손바닥에 남은 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이번에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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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안은 짙은 회색빛 장막이 쳐진 것처럼 어두웠다.
켜지지 않은 조명 대신, 벽면 전체를 압도하듯 차지한 대형 디스플레이의 붉은 빛만이 사람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회의실 가장 안쪽, 오랜 세월 동안 이 행성의 기후를 지탱해 온 자가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어깨는 지나온 시대의 무게만큼이나 굽어 있었고, 백발이 성성한 머리칼은 정돈되지 않은 채 거칠게 흐트러져 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그는 손등으로 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희끗한 눈썹 아래로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오랜 세월 방대한 데이터를 읽어내느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떨리는 노인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가볍게 짚었다.
“현재 온도는 몇 도지?”
노인의 목소리는 쉰 듯 낮았으나, 회의실의 가라앉은 공기를 자르듯 선명하게 꽂혔다.
대형 화면 위에 숫자가 붉게 떠올랐다.
벽면 전체를 차지한 화면에 숫자가 나타났다.
43.7℃
누군가 숨을 삼켰다.
“계절 보정값은?”
“적용했습니다.”
“측정 오류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다른 관측소는?”
“동일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화면의 숫자가 바뀌었다.
44.0℃
불과 몇 초 사이였다.
회의실 중앙에 앉아 있던 노인이 다시 물었다.
“해수면은?”
“지난 12개월 동안 평균 1.8미터 상승했습니다.”
“빙권은?”
“북극권의 영구빙이 예상보다 빠르게 붕괴하고 있습니다.”
“생태계는?”
이번에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공기 중에 팽팽한 장력이 걸렸다. 서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맨 앞줄에 앉은 젊은 연구원을 똑바로 응시했다.
젊은 연구원은 멈추지 않는 손떨림 때문에 겨우 두 손을 무릎 위에 꾹 움켜쥐었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말해.”
젊은 연구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해양 산성화가 임계치를 넘었습니다.”
“얼마나?”
“복구 가능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회의실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에는 푸른 행성의 지도가 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온 대기와 해류와 생태계의 균형.
그 위에 붉은 선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점이었다.
하나.
둘.
열.
그러더니 대륙 전체로 번졌다.
노인이 물었다.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려.”
“이미 2,481회 돌렸습니다.”
“다시.”
“결과는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연구원은 명령을 입력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행성의 미래가 나타났다.
십 년.
삼십 년.
오십 년.
백 년.
곡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마지막 지점에서 그래프가 화면 위쪽을 뚫고 사라졌다.
누군가 아주 작게 말했다.
“이건 자연적인 변동이 아닙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굵어졌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회의실까지 들려왔다.
노인은 창가로 걸어갔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푸른 바다. 아직은 아름다운 바다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과 안전한 것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젊은 연구원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최악의 경우…”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백 년입니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
백 년.
한 사람에게는 긴 시간이었다.
문명에게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행성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날 오후, 세계 전역의 모든 통신망과 미디어 네트워크가 동시에 강제로 개방되었다.
행성 기후관리위원회는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긴급 성명을 전 세계로 송출했다.
도시의 모든 거리, 빌딩의 외벽,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는 거대한 스크린마다 그 문장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멎고 오직 빗소리만 남은 그 순간, 문장의 글자들이 하나씩,
차갑고 무자비한 간격을 두고 또박또박 아로새겨졌다.
“행.성.냉.각.프.로.젝.트.를 승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