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엄마, 저는 우리 마을이 참 좋아요

by비단

오랜만에 아이와 마을을 함께 걸었다.

“엄마, 아파트들이 이렇게 낮았었나요?”
“나무가 이렇게 많았었나?”


아이는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듯 마을 곳곳을 둘러보았다.

“엄마, 여기 맛있는 돈가스랑 비빔밥 파는 집 있었잖아요.”
“맞아. 우리 자주 갔었지.”
“저 아래 사고력 게임 학원까지 늘 걸어가곤 했었잖아요. 은채 유모차 태워서 엄마랑 노래 부르면서 가다 보면 금세 도착하곤 했었는데.”

걷다 보니 또 하나의 기억이 따라 나왔다.

“놀이터 있던 감자탕집도 생각나요.”

아이의 기억 속에는 그대로인데 이제는 사라진 곳도 많았다. 다른 가게가 들어선 곳도 있었고, 예전과 달라진 풍경도 있었다.

“없어진 곳들이 많네요…….”

아이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나도 조금 서운했다. 그때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란 만큼 마을도 변했다.
그래도 그곳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 여기 기억나요.”
“여기도요.”

아이가 한마디씩 꺼낼 때마다 그때의 아이 모습이 하나둘 떠올랐다.

TV에 아파트 채널을 틀면 도서관 소파에 누워 바카라장을 넘기는 아이를 자주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다가 TV 속 아들을 보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저 바카라 다 읽고 오면 시간이 맞겠네.”

두꺼비와 작은 생명들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던 아이, 친구들과 두꺼비생태공원을 뛰어다니던 아이. 가끔은 구룡산을 정복하기도 했었지.

그렇게 마을 곳곳에는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기억까지 숨어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는 우리 마을이 참 좋아요. 따뜻한 기억이 많거든요. 제겐 고향이 있는 기분이에요.”

그 말이 참 고맙다.

마을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놀고 배우며 조금씩 자랐다.

그때는 그 모든 것이 특별한 줄 몰랐다.
그저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었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느꼈던 따뜻한 정서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아 다행이고 고맙다.

함께한 사람이 있고, 여기저기 추억이 있고, 다시 돌아왔을 때 “여기 기억나!” 하고 이야기할 곳이 많으면 그곳이 고향 아닐까.

없어진 가게를 보며 아쉬워하고, 오래된 나무를 보며 그때를 떠올리고, 걷던 길에서 어린 날의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곳.

아,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따뜻한 고향이 있구나.

이 마을로 이사 오던 해 태어난 딸과 다섯 살 꼬마였던 아들은 어느덧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훌쩍 자란 지금, 오래전 기록들을 다시 꺼내어 본다.


두꺼비마을신문에 ‘우리집 짱구짱아’라는 이름으로 실었던 이야기와 신문에는 미처 담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오래 간직해 온 이야기들이다.

그 하루하루가 모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되고,

우리 가족의 추억이 되고,

아이들이 돌아와 그리워할 고향이 되어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함께 키워준 사람들,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성장한 엄마의 이야기.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

이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마을에서 함께 놀고 배우고 자란 아이들, 부모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함께 바라보고 키워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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