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유독 아이들과의 관계가 평온하고 수월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첫째 또래의 엄마들은 사춘기로 힘들어했다. 시험 기간인데도 할 일을 미룬다거나, 핸드폰 사용으로 갈등을 겪거나, 부쩍 말대꾸가 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내게는 사실 조금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새벽 6시 반에 깨우면 피곤할 텐데도 한 번에 일어나고, 알아서 시험공부 일정을 짜며 자기 할 일을 하는 첫째 덕분에 거의 부딪힐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둘째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애교까지 많은 둘째는 다정한 멘트와 쪽지로 감동을 선사했다. '난 참 행복한 엄마구나.' 이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이를 키우며 입방정을 떨면 안 된다는 건, 육아 연차가 쌓이며 체득한 절대적 진리다.
사춘기로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주문처럼, 혹은 안전장치처럼 항상 이 부사를 붙인다.
“아직까지는 그런 듯해. 아직까지는...”
자식 일 앞에서는 제아무리 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어도 쉽게 무너지고 연약해진다는 걸 수없이 목격했다.
당연히 나 역시 예외는 아닐 테고. 그래서 정말 친한 사이를 제외하고는 아이 이야기, 특히 자랑으로 들릴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튼, 한동안은 참 평온했다. 그리고 이 평온함을 어느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6월 초, 평화롭던 일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둘째가 목이 불편하다고 하여 소아과를 방문했다. 똑딱 접수 이력을 보니 9개월 만이었다. 목이 부어 일주일 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둘째 수현이는 새로운 환경이나 경험을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어린이집부터 치앙마이의 국제학교까지 적응으로 애를 먹인 적이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만드신 아주 쌉싸름한 흑마늘도 우리 집에서 제일 잘 먹을 만큼 식성도 무던하다. 그런 수현이가 이번 항생제는 유독 힘들어했다. 하루 세 번, 약을 준비할 때마다 아이는 괴로운 신음을 냈고, 쓴 약으로 인해 밥 맛까지 뚝 떨어진 아이를 일주일 동안 어르고 달래는 사이 나도 점점 지쳐갔다.
감기약 복용이 끝날 때쯤, 배앓이가 시작됐다. 항생제 부작용이든 면역력 저하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복통이 지속되면서 아이의 일상도 무너졌다. 살살 아프거나 가끔씩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으로 모든 신경이 배로 쏠린 아이는 학교에 갔다 보건실로 향했고, 조퇴를 했고, 컨디션이 더 안 좋을 때는 결석을 해야 했다.
프리랜서 강사인 나에게 수업 시간을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수현이는 배가 아플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없어도 잘 지내던 아이는, 아프고 나니 엄마가 옆에 없으면 매우 불안해했다. 겨우 전화를 끊고 다시 수업을 진행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아프다며 울면서 전화하던 날, 결국 수업 중간에 양해를 구하고 뛰쳐나왔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의 귀가마저 늦어지고, 눈치 없이 비까지 쏟아지던 그 밤,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종종거리며 사나’ 싶어 대상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한 분노와 슬픔이 와락 쏟아졌다.
아이는 당연히 아플 수 있다. 아프면서 크는 거고, 아이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지 않나?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일상이 내 의지와 다르게 자꾸 흔들리는 상황이 지속되자, 엄마임에도 나는 너무 버거웠다. 어떤 날은 아픈 아이에게 참다 참다 짜증을 내 버렸다. 아픈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한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후회스러웠다. '이런 나는 누가 위로해주나 싶어' 서글퍼졌다.
평온했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첫째한테까지 말이 곱게 안 나갔다. 피로한 몸과 마음은 잊고 있던 해묵은 고민거리들까지 불러냈다. 육아도, 인생도 한없이 평온하게 굴러가다 순식간에 밑바닥을 치니, 파도나 그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스쳤다.
밑바닥을 찍은 밤, 가만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면, 그 기적 같던 일을 귀하게 여기던 초심이 어느새 공기처럼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첫째와 둘째가 내게 왔을 때,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을 처음 안았을 때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는지, 그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얼마나 큰 기적이었는지... 나는 그새 잊고 있었다.
다시 깨달았으니 정신 차려야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아픈 아이의 배를 쓸어주고, 엉킨 일정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당연함에 속아 무뎌졌던 마음을 다시 추스려야지. 그리고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다는 걸, 잊지 않고 말해야지.
청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는다고 한다.
"시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을 잃게 돼요.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되지요.
하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Alone》
오르고 추락하기를 반복하는 삶의 그네 위에서도,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만큼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기적이 일상이 된 이 삶을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