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던 날, 조용히 젖어들다
오늘
서울에 가을이 내리나 보다
빗물에 젖은
달의 뒷면처럼
말없는 하루가 저물었더라
잿빛 물을 두른 채
나비의 날개로
빗속을 더듬어 가면
고요한 마음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달아 오늘은 숨어가거라
날개야 잠시 쉬어가거라
구름 겹 너머로
오늘
서울에 가을이 스미나 보다
내 안의 조용한 것들부터 먼저 젖어가나 보다
---시인 이형기 님 <비 오는 날 >을 차용했습니다.
가을 초입에 적어둔 시입니다.뒤늦게 꺼내보니 어느새 계절이 깊어졌네요.
‘가을을 샀다’ 이전으로 발행을 먼저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집 한 권을 샀어요.
200편이 넘는 시가 묶인 바카라이었는데, 좋아했던 시들은 몇 편씩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가을이 시작될 때쯤엔 이형기 시인의 ‘비 오는 날’을 중얼거리며, 친구들에게 손편지도 적어 보내기도 했어요.
이번 추석때 본가 제 방 바카라꽂이에 있는 이바카라을 가져왔어요. 펼쳐보니 뭉클합니다.
시인-이형기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노을도 갈앉은
저녁 하늘에
눈먼 우화는 끝났다더라
한 색 보라로 칠을 하고
길 아닌 천리를
더듬어 가면
푸른 꿈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꽃잎 지거라
꽃잎 지거라
산 너머 산 너머서 네가 오듯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