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통신이 끊기자, 소버린 AI가 보였다

우크라이나 스타링크 사태가 드러낸 기술 주권의 가치

byBeomView



image.png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은 날고 있었지만, 통신은 중간중간 끊겼다. 군사용 위성통신 서비스에 제한이 적용되면서 일부 드론 작전까지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쟁터에서 드러난 것은 드론의 성능보다 그 드론을 움직이게 하는 통신망의 통제권이었다.


드론이 날아가는데 통신이 끊겼다

2026년 10월 14일,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위성통신 서비스에 운용 제한이 적용됐다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것은 스타링크의 군사용 체계인 스타실드(Starshield)였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 세르히 베스크레스트노프는 군사용 서비스가 시속 160km를 초과하는 속도에서 작동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현지 군부대는 시속 110~120km에서도 10~20초 동안 통신이 끊기는 현상을 관찰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일부 드론 작전이 취소됐다. 우크라이나군 측은 사전에 변경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저녁에는 통신 상황이 일부 개선됐다. 우크라이나의 미하일로 페도로우 전 국방장관은 시속 160km까지 연결이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스타실드의 속도 제한이 완전히 해제된 것은 아니었다.


스타링크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중요한 통신 인프라로 활용돼 왔다. 기존 통신 시설이 파괴되거나 전파 방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위성을 통해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결망의 이용 조건이 달라지면서 작전에도 차질이 생겼다.


드론은 계속 날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조종사와 기체를 이어주는 통신망의 사용 조건이었다.


제한 조치의 구체적인 배경과 바카라임 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사건 하나로 전쟁의 승패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일론 머스크는 스타실드의 소유와 통제권이 미국 정부에 있으며, 속도와 사용 제한은 미국 군 당국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제한 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장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와 그 사용 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드러났다.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그 기술을 통제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위험해지는 순간

기업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외부 업체에 서비스를 맡기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직접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도 비슷한 방식으로 해외 기술을 활용한다.


해외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하면 대규모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지 않고도 첨단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이 선택이 경제적이려면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 자체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대가가 발생한다.


국가의 중요한 데이터를 해외 클라우드에 저장했다고 가정해 보자. 평상시에는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것보다 경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외교적 충돌이나 제재, 공급자의 서비스 중단으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는 데이터를 얼마나 저렴하게 저장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접근하지 못하는 데이터 때문에 무엇이 멈추는지가 문제가 된다.


기술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성능과 가격을 따진다. 공급이 끊겼을 때는 복구 능력과 대체 수단의 유무가 중요해진다.


유럽은 왜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 할까

유럽연합은 이미 이러한 문제를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202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AI 대륙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의 인공지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AI 연구와 산업 적용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2026년 4월에는 유럽연합 기관들이 이용할 소버린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 최대 1억 8천만 유로, 6년 규모의 조달 계약을 유럽 공급업체 네 곳에 부여했다.


유럽연합은 공급업체를 선정하면서 데이터의 저장 위치뿐 아니라 법률적 관할권과 운영 권한까지 살펴봤다.


공급망의 투명성과 핵심 기술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도 평가 대상에 포함했다.


같은 해 6월 제안된 '클라우드 및 AI 개발법'에서는 기술 주권을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 단계에서는 데이터가 유럽 내부에 저장되고 처리되는지를 평가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과 운영 권한을 얼마나 독립적으로 확보했는지가 중요해진다. 가장 높은 단계에서는 외국의 간섭 없이 소프트웨어 공급망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센터를 유럽 땅에 세웠다는 사실만으로 기술 주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서버는 유럽에 있어도 핵심 소프트웨어의 운영 권한은 외국 기업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외부의 기술 공급이 중단되면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기술이 어디에 있는가보다 그 기술을 누가 통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유럽의 기술 주권 강화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번 통신 문제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진행돼 왔다. 이번 사건은 유럽이 우려해 온 기술 의존의 위험을 전쟁터에서 보여줬다.


소버린 AI는 모든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일까

스타실드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러나 외부 기술에 대한 의존이 국가의 선택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버린 AI(Sovereign AI)와 맞닿아 있다.


소버린 AI란 국가가 자국의 데이터와 인공지능 모델, 컴퓨팅 인프라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든 국가가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을 직접 만들어야 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자체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해서 기술적 독립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나 핵심 소프트웨어를 해외에 의존한다면 여전히 외부 공급망의 영향을 받는다. 반면 외국의 공개 AI 모델이라도 국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수정할 권한을 확보하면 기술 자율성을 높일 수 있다.


AI를 누가 개발했는지와 AI를 얼마나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한국도 같은 질문 앞에 있다. 우리나라는 AI 반도체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대규모 AI 연산에 필요한 첨단 GPU는 해외 기업의 제품에 의존한다. 국내 클라우드 기업들도 성장하고 있지만, 민간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여전히 해외 사업자의 영향력이 크다.


정부가 독자 AI 모델과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는 지금,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모델의 국적이나 성능만이 아니다. 외부 기술의 공급이 끊겼을 때 얼마나 많은 기능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국방이나 국가 핵심 행정처럼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자체 모델 개발이 필요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서비스에서는 해외 기술을 활용하면서 대체 수단을 확보하는 편이 경제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소버린 AI를 평가할 때는 국산 AI 모델의 성능이나 개발 여부만 살펴서는 부족하다.


외부 서비스가 중단되더라도 중요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복구하거나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자체 AI가 모든 위험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개발한 모델도 해킹당할 수 있고, 시스템 장애나 잘못된 판단이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중요한 기능을 하나의 국내 시스템에 지나치게 집중시키면 새로운 취약점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국가가 확보해야 할 것은 외국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상태라기보다, 외부 환경이 달라져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소버린 AI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일까, 보험일까

해외 AI가 더 뛰어나고 저렴하다면 국가는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까?


자체 데이터센터에는 운영 인력과 유지비가 필요하다. 장애에 대비한 대체 시스템까지 확보하려면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투자는 충분한 수익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의 핵심 시스템이 멈췄을 때 발생할 손실까지 계산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해외 AI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금융 거래나 국가 주요 시설의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고 가정해 보자.


자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서비스 중단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비교해야 비로소 투자의 경제성을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보험과 닮았다.


보험금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보험 가입을 낭비라고 볼 수는 없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감당해야 할 손실을 줄이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버린 AI에도 이러한 성격이 있다.


평상시에는 해외 AI보다 성능이 낮거나 운영비가 비싸더라도, 외부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핵심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전략적 가치가 생긴다.


그렇다고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편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서비스 중단 위험과 예상 손실이 얼마나 큰지, 자체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용과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국가는 세계 최고의 AI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위기에도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다른 선택을 할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한다.


기술이 멈췄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

우크라이나의 드론은 계속 날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기체의 성능이 아니라 조종사와 드론을 이어주는 통신망의 사용 조건이었다.


그 통신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동안에는 드론의 성능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연결에 문제가 생기자 누구에게 사용 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가 드러났다.


국가가 중요한 기술을 선택할 때 성능과 비용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 기술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기술의 진짜 가치는 그것을 사용할 때보다,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드러나기도 한다.



세상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정보가 아닌 ‘프레임’을 건넵니다.
- 범뷰(BeomView) -


작가의 이전글의사들은 왜 인스타그램에서 춤을 출까?